동양 사태 이후 크레딧 시장에서는 독자신용등급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독자신용등급은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신용평가를 할 때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채 자체적인 상환 능력을 평가해 매기는 등급이다.
본래 신용평가사들이 개별기업들에게 등급을 부여할 때 그 기업이 기업집단에 속해있을 경우 계열관계를 고려해 반영하는 것이 상식이다. 기업집단에 속하면서 개별기업으로 존재할 때와 달리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통합적인 재무 위험을 반영해야 한다.
◇계열요인 반영 시 긍정·부정 효과 상존
그 효과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은 대개 신용등급에 긍정적으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모기업의 사업적인 연계가 긴밀해 브랜드 인지도 등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만큼 사업 안정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신평사들은 이를 반영해 계열사 기업 등급을 독자신용등급보다 더 높게 매기게 된다. 이는 실제 상환능력보다 부풀려질 수 있지만 지원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동양 사태는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부각시켰다. 동양 사태 이전에도 LIG건설의 사기성 기업어음(CP) 판매 등으로 독자신용등급 필요성은 누누히 제기돼 왔다. 기업 등급에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이 반영되고 투자자들 또한 이런 가능성을 믿고 투자하면서 피해를 더 키웠기 때문이다. 신평사들은 동양 계열사들에 독자등급이 부여됐다면 이미 상당히 낮은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상태였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량 계열사들의 경우 오히려 모기업이나 다른 부실한 계열사들과 엮이면서 독자적인 신용등급을 더 월등하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무디스 등 국제신평사들은 전 세계적인 기업을 평가하기 때문에 국가등급이 반영된 등급과 함께 독자신용등급도 부여하고 있다.
◇미적대던 당국, 도입 결정은 했는데
그동안 금융당국은 독자신용등급이 매겨지면 등급이 더 낮아지는 기업들이 훨씬 많을 것으로 판단해 도입 결정에 신중한 자세를 취해 왔다. 본래 지난 3월부터 도입이 거론됐지만 최근까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실제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으면서 모기업의 지원을 배제할 경우 기업들의 독자신용등급이 최종등급보다 낮아지며 자금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위험업종으로 분류되는 건설, 해운, 조선 등은 대기업의 계열사 형태가 태반이다.
결국 지난 21일 금감원이 2015년 독자신용등급 도입을 결정했지만, 내년도 아닌 1년 뒤로 멀찍이 시점을 박은 것도 이런 고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도입시기를 너무 멀리 잡으면서 당장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준비과정이 필요하지만 이미 신평사들은 기업들의 신용평가 과정에서 독자신용등급을 도출하고 있고 계열요인을 반영한 최종등급만 공시해왔기 때문에 실무적인 과정에서는 도입 자체에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몇달전 한국기업평가 등은 독자등급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종합평가 의견에서 독자등급과 관련된 평가요소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만병통치약 못돼..`추가정보 제공` 긍정적
독자신용등급 도입 필요성이 절실했지만 독자신용등급이 만명통치약이 되지는 못한다. 본래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의 경우 독자신용등급도 필요하지만 모기업이나 계열위험이 제대로 반영된 신용등급이 부여될 필요가 있고 이것이 최종등급으로 활용되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독자신용등급 도입은 계열지원이 포함되지 않은 기업들의 자체적인 상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시장이 추가적인 기업 신용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분명 긍정적"이라면서도 "너무 큰 기대를 갖거나 우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는 "부실한 계열사는 등급이 낮아지고 우량한 계열사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렇지만 추가적인 정보일뿐 계열지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신용등급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