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의 한계
지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2강'은 쿠팡과 네이버입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쿠팡의 시장 점유율을 24.5%, 네이버의 점유율을 23.3%로 봤습니다. 시장의 절반을 쿠팡과 네이버가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업계에서는 올해에도 두 기업이 나란히 20%대 점유율로 경쟁 중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위권부터는 10%를 채우기도 아슬아슬합니다.
이들 두 기업이 이커머스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만 방향성은 다릅니다. 쿠팡은 '1P 모델(직매입)'이 핵심입니다. 쿠팡이 파는 물건은 쿠팡이 직접 구매해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합니다. 30조원을 웃도는 매출의 90% 이상이 직매입 상품에서 나옵니다.
반면 네이버의 쇼핑 방식은 '중개업'입니다. G마켓이나 11번가처럼 네이버쇼핑이라는 플랫폼을 차려 놓고 판매자들이 들어와 제품을 팔면 네이버는 수수료를 받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잡히는 네이버의 쇼핑 매출은 쿠팡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쿠팡은 1000원어치를 팔면 1000원이 매출이지만, 네이버는 수수료만큼만 매출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오픈마켓은 직매입과 달리 재고 걱정 없이 수수료 기반 운영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하지만 쿠팡처럼 빠른 배송을 할 수 없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이버가 꺼내든 카드는 'NFA(네이버 풀필먼트 연합)'입니다.
여러 물류 업체들과 연계해 풀필먼트 서비스를 도입, 배송 속도를 앞당긴 겁니다. 현재 NFA에 참가하고 있는 업체만 10여 개에 달합니다. 지난 2022년엔 CJ대한통운과 '도착보장'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대한통운의 풀필먼트센터를 활용해 오픈마켓임에도 익일 배송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익일 배송도 빠르긴 하지만 새벽배송·당일배송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겁니다. 실제로 쿠팡이 올해 3분기 매출이 지난해 3분기 8조1028억원보다 30% 넘게 늘어난 10조6900억원에 달했는데요. 같은 기간 네이버 커머스 부문 거래액은 11조9000억원에서 12조5000억원으로 5%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제국VS연합
상황이 이렇자 결국 네이버도 새벽배송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네이버는 지난 11일 팀네이버 통합 콘퍼런스를 열고 새로운 물류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오늘배송, 내일배송, 시간 단위 배송인 지금배송, 새벽배송 등의 배송 서비스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쿠팡처럼 물류센터를 지어서 새벽배송을 구현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신 네이버 쇼핑 성장 플랜의 중심에는 CJ대한통운이 있습니다. 새벽배송은 물류센터 없이는 불가능한 서비스입니다. 어마어마한 선투자가 필요합니다. 택배업계 1위쯤 되는 기업이거나, 수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도 추가 투자가 들어오는 기업이어야 버틸 수 있습니다. 네이버의 쇼핑 시장 확대에 CJ대한통운이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대결은 쿠팡과 네이버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쿠팡 대 네이버 연합' 혹은 '쿠팡 대 CJ대한통운 연합'의 대결에 가깝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쇼핑 경쟁이라고 보면 네이버가 주체일 것이고, 물류 경쟁이라고 보면 CJ대한통운이 주체가 되겠죠.
각자의 영역에서 1위 기업들이 뭉치니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의 서비스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새벽배송을 포기하지 못하던 소비자·입점업체에게 네이버쇼핑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안이 될 겁니다. 쿠팡이 자랑하는 쿠팡플레이·쿠팡이츠 등의 부가 서비스 역시 네이버가 넷플릭스로 카운터를 냈죠. 쿠팡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도전일 겁니다.
하지만 시장이 흔들릴 수준은 아닐 거란 전망도 있습니다. 결국 본질은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새벽배송으로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의 가짓수와 물량에서 경쟁사들이 쿠팡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습니다. 쿠팡은 현재 40여 개의 물류센터와 80여 개의 배송기지를 운영 중입니다. 2026년까지 3조원을 들여 물류센터 8개를 더 짓겠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어찌됐든 소비자 입장에서 경쟁이 붙는 건 좋은 일입니다. 독점 서비스는 품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 시장의 이치입니다. 경쟁하는 가운데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고 소비자를 위한 정책도 늘어나겠죠. 기업 관계자가 들으면 소름이 끼치겠지만, 어느 한 쪽도 이기지 말고 계속 경쟁해 줬으면 하는 게 소비자로서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