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생들 가운데 수습기간을 보낼 회사를 찾지못한 '미지정' 회계사가 200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근본적인 대책을 찾기 위해 업계와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회계법인 규모에 따라 신입 회계사 채용 비중을 정해주는 쿼터제도 해결방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다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한공회는 일단 응급처방을 쓰기로 했다. 회계법인들의 협조를 구해 미지정 회계사들이 3개월만이라도 인턴 형식으로 수습기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한공회장 직속 위원회서 해결책 논의
회계업계에 따르면 한국공인회계사회 상생협력위원회는 지난 19일 회의를 열고 복수의 소위원회를 꾸렸다. 상생협력위원회는 2020년 김영식 한공회장 재임 시절 만들어진 회장 직속 위원회로 회계산업 발전을 위해 대형-중견-중소회계법인 대표들이 모여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기구다.
이 가운데 제2소위에서는 최근 논란이 된 수습회계사 미지정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위원으로 참여하는 중소회계법인협의회장은 해결방안으로 회계법인별 채용 쿼터제를 제안했다. 이는 회계법인 규모 별로 수습회계사의 적정 채용 비중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이 사안에 정통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합격자가 몇 명이 배출되든 감사 품질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대형회계법인들이 규모에 맞게 어느 수준 이상을 채용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업황이 좋아진다고 빅4가 신규인력을 전부 빨아들여 채용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한을 정하는 등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채용규모를 규정으로 강제하는 건 일부 회계법인들의 거부감을 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회사에 재정 등 사정이 있을 수 있는데 채용규모를 의무적으로 정해주는 것은 과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턴채용도 수습기간으로' 응급처방
논의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만큼 최종 안이 나올 때까진 긴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러나 올해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생들이 내달 공공기관 채용시즌까지 취업을 하지 못한다면 수습기간을 시작할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이에 따라 한공회는 일단 대형 회계법인이 운영하는 동계감사 기간 인턴십을 활용할 방침이다. 인턴십은 원래 회계사 준비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기간은 약 3개월이다. 미지정 회계사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턴으로 일하는 기간도 수습기간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만일 동계연수 기간 이후에도 취직을 하지 못한다면 한공회에서 운영하는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나머지 수습기간을 마치도록 한다.
한공회는 현재 대형 회계법인의 협조를 구한 상태이며 금융위원회와 최종 협의를 거칠 예정이다. 한공회 관계자는 "회계법인들과 협의를 해 내놓은 비상책"이라며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려면 앞으로 심도있는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수습회계사 미지정 문제는 최근 회계사 신규 선발 인원이 급격히 늘면서 발생했다. 금융위는 매년 공인회계사 자격징계위원회를 통해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을 정하는데, 2020년부터 2023년까지 1100명을 유지해오다가 올해는 감사원 지적을 받아 1250명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합격생 숫자는 늘었지만, 업황 악화로 인해 회계법인들의 인력 수요는 줄면서 합격생들이 1년의 수습기간을 보내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올해 합격생 중 아직 구직활동 중인 미지정 회계사는 240여명이다.
회계품질을 감독하는 당국에서도 수습교육이 감사 품질과 이어진다고 판단하는 만큼 미지정 회계사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수습 시스템이 잘 갖춰진 빅4(삼일·삼정·안진·한영) 외 등록회계법인에서 수습기간을 보내는 회계사 비중은 2022년 3.5%(43명)에 불과했지만 25.2%(269명)로 대폭 늘었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 감사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며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금감원은 "회계법인은 수습 및 저연차 회계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전문성 및 경험을 고려한 적절한 업무 ̇배정이 이뤄지도록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