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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줍줍]증권사가 시설투자?…현대차증권 유상증자하는 이유

  • 2024.11.29(금) 13:00

26일, 20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 발표
유상증자 자금 시설투자 및 채무상환에 쓸 예정
배당주로 투자한 소액주주들 유상증자에 당혹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현대차증권이 지난 26일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어요. 이번 유상증자는 지난 2008년 현대차그룹에 계열사로 편입된 이후 실시하는 두 번째 주주배정 유상증자예요. 앞서 현대차증권은 2009년 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어요. 

▷관련공시: 현대차증권 11월 26일 주요사항보고서(유상증자결정)

14년 만에 현대차증권 이사회는 다시 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요. 회사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결의했다고 밝혔어요. 

하지만 현대차증권 소액주주들의 분위기는 영 신통치 않은데요. 시가총액 2000억원 대의 회사가 시총에 버금가는 규모로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줄곧 8000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는 7000원대로 떨어졌어요. 

현대차증권의 이번 유상증자가 어떤 의미인지, 주주들이 알아야 할 점을 짚어 볼게요. 

3000만주 신주발행…2000억원 손에 쥐는 현대차증권 

현대차증권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총 3012만482주의 신주를 발행하기로 했어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는 기존 주주들에게 먼저 보유지분 비율대로 유상증자 신주에 청약할 권리를 배정한 뒤 팔지 못하고 남은 실권주를 주주가 아닌 다른 투자자에게 파는 방식이에요. 

9월 말 기준 현대차증권 주요주주는 △현대차 25.43% △현대모비스 15.72% △기아 4.54% △배형근 현대차증권 대표이사 0.03% 순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어요. 소액주주는 현대차증권 지분 46.39%를 보유 중이에요. 

주요주주인 현대차는 유상증자를 통해 배정 받은 물량 100%를 청약하겠다고 밝혔어요. 현대모비스, 기아도 이사회를 거쳐 유상증자 참여 여부 및 청약 수량을 결정할 예정이에요.

현대차증권 소액주주들 역시 기존에 보유한 지분율을 기준으로 유상증자 비율(0.69)에 따라 신주 청약을 할 권리가 주어져요. 청약을 할지 말지는 투자자의 몫인데요. 청약을 한다면 시세보다 저렴한 1주당 6640원(예정발행가로 추후 시가변동에 따라 바뀔 수 있음)에 현대차증권 신주를 살 수 있고요. 

만약 청약을 하지 않는다면 신주인수권, 즉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주식시장에서 팔 수 있어요. 현대차증권 종목명 뒤에 R(Right, 권리)이 붙은 주식이 들어오면 이를 일반주식처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사고 팔 수 있어요.  

현대차증권 유상증자 결정

RCPS‧기업어음 상환…빚 갚는 데만 1000억원 쓴다

문제는 유상증자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반응이에요. 줄곧 8000원대 중반을 유지하던 현대차증권 주가는 26일 유상증자 발표 다음날인 27일 7000원대 중반으로 떨어졌어요. 

주주들은 "밸류다운의 본보기다", "채무상환을 왜 주주 돈으로 하냐", "빚은 회사가 내가 돈은 주주가 갚고" 등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특히 유상증자로 확보할 2000억원의 자금사용처에 대한 불만이 무엇보다 커요. 

현대차증권은 27일 공시한 증권신고서를 통해 시설투자에 1000억원, 채무상환에 225억원, 기타자금으로 775억원을 쓰겠다고 밝혔어요. 여기서 기타자금은 지난 2019년 현대차증권이 경영상 목적을 위해 발행했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갚는데 쓰이는데요. 

RCPS는 회사가 돈을 빌리는 대신 RCPS투자자는 회사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돈으로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두 가지 권리가 모두 있는 주식이에요. 1036억원 규모로 발행했지만 이중 일부는 전환권 행사를 완료했고 아직 775억원의 잔액이 남아있는 상황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RCPS투자자가 현대차증권에 먼저 상환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회사가 먼저 나서서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해 RCPS로 빌린 돈을 갚겠다고 한 것이죠. RCPS는 우선주인만큼 소액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주보다 배당률이 높고 우선배당권을 가져요. 

문제는 계약 조건상 내년부터 RCPS의 우선배당률이 금리 수준을 고려해 점점 높아지는 조건(스텝업)이 있다는 점이죠. 또 현대차증권 주가가 떨어져 더 이상의 주식 전환(전환가격 1만1000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상환을 결정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여요. 

결국 높은 배당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차피 돈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만큼 현대차증권은 RCPS를 조기상환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채무상환에 쓰겠다는 225억원은 흥국증권과 부국증권에서 이자율 3.94%에 빌린 기업어음증권을 갚는데 쓰이는 액수예요. 금액은 적지만 기업어음증권도 갚아버림으로써 궁극적으로 부채비율을 개선하고 금융비융을 절감하겠다는 것이죠. 형태는 다르지만 RCPS와 기업어음증권 모두 빌린 돈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채무를 갚는데 총 1000억원의 유상증자 자금이 쓰이는 것이죠.

증권사가 시설투자에 1000억원을 쓴다고? 

소액주주들이 또 하나 의문을 던지는 점은 나머지 1000억원의 자금사용처인 시설투자예요. 

현대차증권은 주식을 찍어내는 제조공장도 아니고 최대주주인 현대차처럼 자동차를 만들 제조설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죠. 또 종이로 된 주식을 거래할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 만큼 증권사가 시설투자에 자금을 사용하겠다는 것이 의아하다는 건데요. 

회사가 밝힌 시설투자 목적은 차세대 원장 시스템 개발이에요. 차세대 원장 시스템은 증권사가 운영하는 MTS, HTS, 퇴직연금시스템, 고객정보관리시스템 등 모든 플랫폼의 근간으로 시스템 장애 중에도 서비스 중단이 일어나지 않아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처리가 가능해요. 

기존 시스템이 너무 노후화돼 데이터 활용 기반이 부족한 만큼 차세대 원장 시스템을 구축해 업무통합 및 상품별 업무처리를 용이하게 만들겠다는 목표예요. 또 상대적으로 다른 증권사보다 약한 위탁매매(브로커리지)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디지털PB센터. 데이터 기반 디지털 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에요. 현대차증권의 MTS를 개선하는데도 비용이 쓰여요. 

또 자산관리(WM) 업무를 위해 프리미어PB센터 역량을 강화하고 법인대상 영업을 위해 주문 인프라 개선 및 주식 대차중개서비스 등 추가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에요. 아울러 현대차증권이 강점을 보이는 퇴직연금분야도 온라인 가입시스템을 구축하고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늘리겠다는 계획인데요. 

현대차증권은 올해 사전준비를 마치고 2025년부터 자금을 사용해 2027년까지 목표한 차세대 원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어요. 

이에 대해 현대차증권 관계자는 "대형증권사는 이미 자체시스템을 쓰고 있지만 소형증권사는 시스템 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 코스콤 시스템을 쓰고 있다"며 "문제는 시스템이 오래되어 처리 속도가 느려져 차세대 원장 시스템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어요.

그러면서 "차세대 원장시스템으로 교체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들고 MTS서비스 개선 역시 돈이 많이 들어간다"며 "리테일 등 개인고객 강화뿐만 아니라 법인영업, 자산관리 전 부분에서 시스템 개선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좋지 않은 경영성과...책임은 소액주주 '몫'

회사의 주주라면 최대주주이든 소액주주이든 회사의 경영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어느 정도의 책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해요. 다만 현대차증권의 이번 유상증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지점도 있어요. 

현대차증권이 차세대 시스템 개발이나 빚을 갚기 위해 쓰는 자금은 회사가 본업을 잘했다면 주주에게 손을 빌리지 않고도 경영성과를 통해 축적한 자금으로 마련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죠. 

현대차증권의 순이익(연결재무제표 기준)은 2018년 506억원에서 2021년 1178억원을 기록하면서 꾸준히 성장해왔는데요. 문제는 2022년부터 순이익이 871억원으로 감소하더니 2023년 535억원,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358억원을 기록했어요.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531억원)과 비교해도 173억원이나 적은 수치예요. 

증권사에게 정말 중요한 수치 중 하나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 Net Capital Ratio)도 좋지 못한데요. NCR은 증권사의 건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로 자기자본만으로 보유자산의 손실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증권사의 주요 업무는 돈을 가지고 영업을 하는 만큼 손실이 났을 때 증권사의 파산을 막고 고객과 채권자가 증권사에 맡긴 돈을 보호할 수 있는 여윳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현대차증권의 NCR지표는 2020년 508%를 기록했다가 2021년 462%, 2022년 451%로 하락했어요. 2023년에는 520%까지 올랐지만 올해 3분기 다시 479%로 떨어졌어요. 

국내 대표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차증권은 2021년 이후 부동산PF 신용공여 확대로 우발채무가 증가했고 국내외 부동산펀드 등 금융투자 상품 확대로 NCR비율이 빠르게 하락했다"고 지적했어요. 

NCR비율을 높이려면 자기자본을 늘려야 하고, 자기자본을 늘리려면 신주 발행을 통해 자본금을 늘려야 해요. 결국 재무구조 개선에도 도움을 받기 위해 이번 유상증자를 택한 것이죠. 한국기업평가는 "이번 유상증자로 재무건전성 지표가 전반적으로 개선된다"며 "자기자본 증가 효과만 반영해 추정하면 NCR지표는 600%대로 크게 상승한다"고 설명했어요. 

현대차증권 최근 주가추이와 배당성향

현대차증권 '배당'보고 투자했는데...

사실 증권사나 은행 등 금융주는 눈에 띄는 주가상승을 기대하기 보단 크게 변동없는 주가흐름과 이에 따른 배당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사례가 많죠. 

현대차증권은 회사 스스로 강조할 만큼 배당을 많이 주는 곳 중 하나예요. 회사는 "지난해 연결기준 배당성향은 29%이고, 최근 5개년 평균 배당성향도 27%이상을 기록하는 등 주주가치제고를 위해 고배당성향을 유지해왔다"고 강조했는데요. 

현대차증권은 최근 10년 간 꾸준히 배당을 해왔고 올해 3월 주주들에게 1주당 400원의 배당금을 지급했어요. 소액주주들은 주가상승으로 차익실현을 얻기 보단 안정적인 배당금을 바라보고 현대차증권에 투자했다고 볼 수 있죠. 

문제는 유상증자를 한다고 해서 주주들이 받는 배당금이 늘어나진 않아요. 회사가 갑자기 이익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배당할 수 있는 액수는 정해져있어요. 결국 유상증자 참여 전후의 배당금 액수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뿐이죠. 

소액주주 입장에선 유상증자에 참여해도 배당금은 기존과 크게 다를 것이 없고 오히려 신주 구입 비용을 지불하느냐, 주가희석을 걱정하느냐 선택해야하는 상황인 것이죠. 

물론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현대차증권이 잘 사용해 높은 경영성과로 이어져 주가도 오르고 배당가능이익도 늘어나면 다행이겠죠. 배형근 현대차증권 대표이사가 강조한 것처럼 이번 유상증자가 현대차증권의 밸류(기업가치)를 '업'할지 '다운'할 지는 지켜봐야할 대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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