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VIP자산운용이 롯데렌탈을 향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롯데렌탈의 대주주가 사모펀드 어피니티PE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증으로 값싸게 지분을 매입하면서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대폭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이사충실의무 강화, 의무공개매수 도입을 공약한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가운데 자본시장에서는 이번 자본거래의 향방에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관투자자인 VIP자산운용은 9일 롯데렌탈에 공개적으로 유상증자 철회를 요구했다.
앞서 롯데렌탈은 지난 2월28일 최대주주 롯데그룹의 보유지분 61.17% 중 56.17%를 어퍼니티PE에 1조5728억원(주당 7만7115원)을 받고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동시에 어퍼니티PE를 대상으로 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주식총수의 20%에 이르는 726만1877주의 신주를 발행하겠다고 공시했다. 롯데렌탈은 1주당 발행가액을 2만9180원으로 정했으며 발행규모는 2119억원이다. 어퍼니티PE와 롯데렌탈은 유상증자를 통해 회사에 들어온 자금을 사채 조기상환 대응, 렌탈차량 구매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렌탈은 현재 공정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를 받고 있다. 유상증자는 공정위 심사 등 지분 매매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조건으로 완료할 예정이다. 정상적으로 유상증자까지 마치고 나면 어퍼니티PE는 지분을 63.48%까지 확대해 롯데렌탈의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VIP자산운용이 문제 삼는 지점은 유상증자다. 롯데그룹은 보유 주식(구주)을 주당 7만7115원으로 팔아 1조원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보장받는 반면 신주 발행가는 1주당 2만원대에 불과해 기존 일반주주들의 보유한 주당 가치 희석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금액을 조달하려고 해도 신주 발행가가 낮으면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이 더 크다. 이번 유상증자로 인해 일반주주들의 지분율은 10분의 8 수준으로 희석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매수자인 어퍼니티PE는 평균매입가를 6만4529원으로 16%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VIP자산운용은 "만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또는 유상증자의 대상이 어퍼니티PE가 아닐 경우에 구주 매각가격이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VIP자산운용은 회사가 보유한 현금자산을 고려할 때도 유상증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롯데렌탈은 45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4년 말 기준 회사의 부채비율은 377%로 주요 경쟁사 평균 부채비율(592%) 대비 낮은 편이다.
어퍼니티PE가 지난해 매수한 SK렌터카 사례와 비교했을 때 유상증자의 당위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SK렌터카는 대주주 변경으로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됐음에도 유상증자를 단행하지 않았다. 사채 조기상환 요구에 대응할 때도 부채비율이 롯데렌탈보다 200%포인트 높고 보유 현금도 1800억원에 불과하지만 유상증자 대신에 신규 사채 발행을 택했다.
VIP자산운용은 롯데렌탈이 최대주주 변경과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이후 비공개대화를 시도해왔지만 롯데 측이 유상증자 강행 의사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사의 주주충실의무가 담긴 상법 개정,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사충실의무와 의무공개매수 제도는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자본시장 공약으로 여당이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이번 유상증자는 회사 재무상태에 비춰 정당성이 낮고 일반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투자자들이 명백한 손해를 입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상증자 계획 철회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