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해외주요국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불똥이 펀드시장으로 튀었다.
금융당국이 원금 손실 위험이 크거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할 때 이사회 승인과 함께 녹취·숙려제도 도입 등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나선 탓이다. 자산운용업계는 이번 규제가 펀드시장을 고사시키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펀드시장으로 번진 'DLF 사태' 불똥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일 금융사들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또는 '고난도 투자일임·금전신탁계약'을 판매할 때 판매·계약체결 전 과정을 녹취하고 2영업일 이상의 숙려기간을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또는 고난도 투자일임·금전신탁계약에는 ▲원금 20%를 초과하는 손실이 날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DLS) ▲파생상품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펀드‧투자일임‧금전신탁계약 등이 속한다.
지난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투자자 대부분이 원금손실 가능성을 모르고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으면서 불만이 폭주하자 재발 방지를 위해 마련됐다.
◇ 펀드 하나 팔려고 이사회 소집까지
고난도 투자상품은 판매를 개시하기 전까지 과정도 험난하다. 판매사들이 이들 펀드를 판매하려면 이사회의 상품 승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해서다. 지금까진 판매 펀드 라인업을 결정할 때 실무부서 차원에서만 검토해왔는데, 앞으로는 매번 이사회를 소집해야 한다.
그러면서 펀드 판매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무진 입장에선 이사회 소집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펀드 판매 라인업 자체를 줄일 가능성이 커서다. 여기에 실무단을 통과한 펀드라도 이사회 승인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라임·옵티머스 등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에 비춰봤을 때 판매사의 책임을 묻는 사례가 빈번해 이사회가 몸을 사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통상 펀드 판매사의 판매 수수료는 1~2% 수준이다. 예컨대 판매액 100억원 규모의 경우 판매사에 떨어지는 수수료 수익은 1억~2억원 수준에 불과해 실무진은 이사회 소집을 꺼릴 수 있고, 이사회도 이 수익을 위해 리스크를 떠안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3월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도 펀드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금소법 내 '위법계약해지권'이 신설되면서 금융사가 6대 판매 규제를 위반한 경우 소비자는 계약체결일로부터 5년 내 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6대 판매 규제에는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규제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폐쇄형 사모펀드'의 경우에도 위법계약해지권을 통해 만기 전이라도 펀드 환매를 요구할 수 있다. 소비자의 계약 해지 요구 시 판매사가 판매 규제를 어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며 입증하지 못하면 계약은 해지된다. 계약은 해지 시점부터 무효가 된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판매사 펀드 판매 부서에선 판매 수수료 몇 푼 챙기자고 이사회 소집에 나서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펀드 판매액 급감은 예고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매사 관계자도 "현재 판매사들 사이에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포비아가 만연한 상황"이라며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은 상품을 가져오는 실무 부서에서 한 번, 이사회에서 한 번, 판매 영업점에서 한 번 등 세 번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