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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한 총액인수...수요부진에 회사채 발행 '고무줄'

  • 2023.08.14(월) 09:00

다올證, 수요예측 실패하자 발행량 800억→500억 축소
주관사 KB증권 총액인수 맺었지만 실제로는 단순주선
해외IB보다 한층 작은 자기자본 규모, 총액인수 걸림돌

최근 다올투자증권이 창사 이래 첫 공모사채 발행을 진행하던 중 쓴맛을 봤다. 신용등급은 '싱글A'로 우량등급을 부여받았지만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리스크 등이 기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며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얻었다. 결국 총액인수계약을 맺은 주관사 KB증권과 협의해 발행규모를 8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줄였다. 

이처럼 총액인수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발행사(기업)와 주관사(증권사) 간 발행금액을 자의적으로 줄이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평판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고, 주관사는 인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카드를 선택하곤 한다. 사전 수요에 따라 움직이는 관행이지만, 증권사가 회사채를 전부 인수한 다음 기관투자자에게 넘기는 방식인 총액인수계약의 의미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비즈워치

다올證, 수요예측 흥행실패에 발행량 대폭 줄여

14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 8일 다올투자증권은 1년물 551-1회차, 1년 6개월물인 552-2회차 무보증 사채 증권발행신고서를 게시했다. 각각 200억원, 300억원 규모이며 최종금리는 수요예측을 거쳐 7.00%, 7.30%로 확정했다.

1년물에는 180억원어치 청약이 접수돼 대표주관사인 KB증권이 미매각 물량 20억원어치를 떠안았다. 1.5년물은 300억원 어치 모두 청약 주문을 낸 기관투자자 몫으로 돌아갔다. 

당초 다올투자증권은 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했다. 곧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 단기사채 등 단기물 상환에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발행량을 500억원으로 줄인 건 수요예측에서 기관들로부터 차가운 외면을 받으면서다. 지난달 28일 진행한 800억원 어치 대상 수요예측에서 1년물과 1.5년물은 각각 180억원, 300억원의 유효수요만 접수됐다.

다올투자증권은 무난한 신용등급 'A'를 부여받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PF 리스크 관련 불확실성이 기관들의 우려를 높였다. 6월 말 기준 다올투자증권의 채무보증액은 2043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27.2% 수준이다.

다올투자증권은 증권신고서 투자위험 항목에 △약정을 체결한 프로젝트의 성과가 부실하거나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정책의 지속적인 강화로 인해 부동산 업황이 저하되는 경우 △과거 글로벌 신용경색과 같이 예측하지 못한 경제상황 등이 발생할 경우에 지속적인 리스크 관리에도 우발채무가 현실화돼 손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재했다. 또 2분기 실적 보고서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고무줄 발행... 진정한 총액인수 아닌 단순주관"

시장에서는 다올투자증권처럼 수요예측을 반영해 애초 계획한 발행 물량을 조정하는게 총액인수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금조달이 필요한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할 때는 주관사와 인수단을 지정해 발행을 위탁한다. 자본시장법 9조에 따르면 인수업무는 △증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취득하거나 취득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 △증권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이를 취득하는 자가 없는 때에 그 나머지를 취득하는 것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총액인수, 두번째는 잔액인수를 지칭한다. 즉 총액인수 방식은 발행물량 전부를 주관사가 인수한 다음 수요예측, 청약, 매출을 진행하는 것이다. 일부 유상증자때 활용하는 잔액인수 방식은 주관사가 청약 후 미매각된 물량만 인수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발행사인 다올투자증권과 총액인수계약을 맺은 주관사 KB증권은 전체 물량을 인수한 다음 청약을 접수받아 기관에 판매하는게 정상이다. 800억원 전량을 인수해 발행 단계를 밟았다면 KB증권은 320억원 어치의 물량을 안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발행시장에서는 다올투자증권과 KB증권 사례처럼 애초 계획보다 발행량을 줄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발행사(기업)이 입장에서는 평판훼손을 최소화하기 하려는 목적, 주관사 입장에서는 미매각으로 인한 물량 인수 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서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이해관계 속 총액인수확약을 체결했음에도 수요예측 후 발행량을 조정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총액인수의 경우 일단 주관사가 물량을 모두 받아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발행사와 증권사가 관계를 서로 고려해 발행량을 조율하는 쪽으로 협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실제 회사채가 발행되기 전까지 발행사와 주관사간 협의를 통해 발행규모를 조정하는 것은 현 규정상 가능하다.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발행규모를 당초 대비 80~120%를 조정할 경우 증권신고서를 정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해당 범위를 조정할 경우 효력발생일이 정정돼야 한다. 증액과 감액 모두 허용된다는 얘기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미매각으로 발행규모를 감액하는 경우는 많지않고, 증발공 규정상 증액이나 감액을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발행사의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발행규모가 고무줄처럼 변동되는 것은 결국 총액인수의 의미가 퇴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임원은 "유효수요로 접수된 금리가 마음에 들지 않다거나 주문량이 적다는 이유로 발행사가 자의적으로 물량을 줄어버리면 주관사가 총액인수가 아니라 단순주선의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IB 대비 약소한 자기자본, 총액인수 걸림돌

증권사들이 총액인수가 실무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적은 자기자본을 꼽는다.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회사채 발행에서 최악의 경우 물량을 전부 떠안았을 경우 국내 증권사가 현재 자기자본 수준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자기자본이 절대적으로 적은 상태에서 총액인수는 건전성 지표인 순자본비율(NCR) 규제 부담을 키운다. 신NCR은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값을 업무 단위별로 설정한 '필요유지 자기자본'으로 나눠 산출한다. 이 비율이 적정 수준인 100%를 밑돌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 권고를 받는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7일 발간한 '종합금융투자사(종투사) 10년 평가 및 한국형 IB의 발전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종투사 1사당 평균 자기자본은 2013년 3조3000억원에서 2022년 6조1000억원으로 84.8% 늘었다. 그러나 절대적 규모는 여전히 작은 편이다. 국내 자기자본 규모 1위인 미래에셋증권도 해외 IB와 견줬을 때 32위에 해당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종투사의 자기자본 규모는 최근 10년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나, 글로벌 IB들과 비교하면 자기자본 규모가 크지 않다"며 "따라서 국내 종투사가 글로벌 IB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지려면 대형화는 지속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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