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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잇슈]"집주인이 돈 없대요" 발 묶인 전세 세입자

  • 2023.01.10(화) 08:42

보증금 반환 못해 억지로 한달씩 '계약 연장'
임대사업자 깡통전세 비율 54%…보증사고 급증

"집주인이 돈 없다고 다음 임차인 구할 때까지 기다리래요. 이사 계획을 다 세워뒀는데 보증금을 못 돌려받아 나갈 수가 없어요."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30대 A씨는 전세보증금 반환을 두고 집주인과 3개월째 갈등 중이다. 작년 11월 전세 계약이 종료됐지만, 집주인이 보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며 계약 연장을 강요했다. 결국 새 임차인이 구해지는 대로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하고 1달씩 계약을 연장하는 상황이다.

금리 인상 여파로 전세 수요가 급감하면서 A씨와 같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이 늘었다. 주택 가격의 대부분을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한 '갭투자' 집주인 때문이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이 보증금을 대신 갚는 '보증 사고'도 급증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임대주택 절반 이상 '깡통전세'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HUG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법인·임대 사업자의 임대주택 절반 이상에 '깡통전세' 위험이 있다. 2020년 8월부터 작년 11월까지 보증보험에 가입한 70만9206가구 중 부채 비율이 80%를 넘는 가구가 54%(38만2991가구)에 달한다.

부채 비율은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권 설정 금액과 전세보증금 합산액을 집값으로 나눈 것으로 통상 이 비율이 80%를 넘으면 '깡통전세'라고 본다.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위험이 크다.

특히 금리 인상에 전세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면서 깡통전세 우려가 커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11월 전국 월세 거래량은 10만6178건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2.6% 증가했다. 전체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3.3%에서 2022년(11월 말 기준) 51.8%로 크게 올랐다.

집주인이 어렵사리 새 임차인을 구해도 전셋값이 뚝 떨어져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려면 추가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8.99% 하락했다. 특히 서울(-10.41%), 경기(-12.65%), 인천(-15.13%) 등 수도권에서 하락 폭이 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에 대한 임차인의 부담이 커지면서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위험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 비중 변화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내 보증금 어떡하나…보증사고도 급증

전세보증금을 지키려면 전세 보증보험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실제 깡통전세 우려에 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 건수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작년 HUG가 발급한 전세 보증은 23만7797가구로 2013년 9월 첫 상품 출시 이후 가장 많은 수다. 작년 발급금액은 총 54조4510억원에 달한다.

동시에 HUG가 집주인 대신 보증금을 변제한 '보증사고'도 급증했다. 작년 반환보증보험 사고금액은 1억1731억원으로 2021년(579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문제는 보증기관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수개월이 걸리고, '빌라왕' 사례처럼 임대인이 사망하면 상속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보증금 지급이 무기한 연기된다는 점이다.

올해도 수요자들의 전세 기피와 수요 감소에 따른 전셋값 하락이 계속될 전망이다. 직방이 자사 어플 접속자 30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9.5%가 "전셋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세대출 이자 부담으로 인한 전세 수요 감소(48.7%)' 때문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임차보증금 반환 리스크(12.6%) △갭투자 관련 전세 매물 증가(11.1%) 등 깡통전세를 우려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전셋값 하락이 지속하면 깡통전세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HUG 등 보증기관의 대위변제가 증가하면 재무 건전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행법에 따라 HUG는 자기자본의 60배까지 보증할 수 있는데, 이같은 추세라면 2024년까지 보증배수가 66.5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셋값이 하락하면 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채무를 상환하기가 어려워진다"며 "버티다 못해 집을 급하게 팔면 매매가격이 더 하락하는 등 연쇄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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