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반발 볼이 있어요?
사회인 제자가 물었다. 그는 내가 골프에 대한 건 뭐든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앞 뒤 설명 없이 묻는 걸 보면. 천만의 말씀이다. 골프 세상은 너무 넓어서 내가 아는 것은 부분일 뿐이다. 그래도 마침 다행이다. 고반발 볼 얘기는 전에 공부한 적이 있어서.
결론부터 말하면 고반발 볼은 없다. 적어도 현재 골프 볼 시장에는 그렇다는 애기다.
엥? 분명 ‘고반발’이라서 더 멀리 날아간다면서 버젓이 파는 데 무슨 소리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더 멀리 날아간다고 주장하는 볼은 분명히 있다. 그 중 일부는 실제로도 더 멀리 날아가기도 하고. 그렇다면 일부는 더 멀리 날아가지도 않는다는 얘기냐고? 그 얘긴 조금 있다가 하고 우선 고반발 볼 이라고 주장하는 볼부터 짚어보자.
골프볼은 크기와 무게 규격이 있다.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두 축인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함께 정한 규격이다. 이 규격을 지키면 ‘공인구’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지키지 않으면? 공인구 인증을 못 받는다. ‘비공인구’라는 얘기다.
물론 규격을 지키면서도 공인구 인증을 일부러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용 부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것은 ‘미공인구’라고 따로 구분하자.
비공인구는 크게 두 종류다. 크기가 살짝 작거나 무게가 약간 무겁거나.
이렇게 만들면 더 멀리 나간다. 이론상으론 그렇다. 작거나 무거우니 공기 저항을 덜 받는다. 이걸 ‘고반발 볼’이라고 파는 것이다. 아니 팔아먹는 것이다. 크기도 작으면서 무게까지 무거운 볼도 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뻔뻔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비공인구가 멀리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고반발이어서 멀리 나가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반발력이야 골프 볼 코어(속에 들어가는 고무로 만든 부분)가 단연 좋다. 아이들이 갖고 놀던 ‘탱탱볼’을 떠올려 보면 된다. 여기에 커버(우레탄이나 서린 레진 재질)를 씌워서 골프 볼을 완성하면 탄성이 떨어져 규격을 충족한다.
고반발 볼이라면 완성한 상태(커버까지 씌워서)로 더 탄성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다. 일부 짓궂은 악당을 빼고는. 느낌이 이상하니까.
그래서 느낌은 공인구와 비슷하면서도 더 멀리 날아가게 만들 꾀를 낸다고 낸 것이 바로 규격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작게 만들거나 무겁게 만드는 것 말이다.
몇몇 골프 볼 업체가 이처럼 ‘규칙을 위반한’ 볼을 ‘고반발’이라고 내세우며 골퍼를 현옥하고 있다. 고반발이라고 하면 마치 기술이 더 좋은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니까. 그런 업체 중에는 국내 유명 골프 볼 업체도 끼어 있다. TV 광고까지 하고 있다.
설마 세계적 골프용품 업체가 이 꾀를 몰라서 출시를 하지 않고 있겠는가? 이른바 ‘고반발 볼’ 말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
왜냐고? 스포츠 용품 업체로서 긍지를 버릴 수 없으니까 그렇다.
스포츠는 정한 규칙 안에서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루는 것이 핵심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미 스포츠가 아니다. 세계적 스포츠 용품 업체가 스스로 이런 원칙을 무너트리겠는가?
물론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골프는 골프일 수도 있다. 스포츠가 아닌 놀이로서 골프 말이다.
그렇다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용품을 만드는 업체는? 절대 스포츠용품 업체는 아니다. 놀이용품 업체지. 놀이용품은 완구라고 부른다.
참고로 기술 개발 안 하고 얕은 꾀로 골프 볼을 만드는 업체 제품 품질은 어떻겠는가? 좋을까? 물어보나마나다.
그래서 기껏 꾀를 냈는데도 볼이 덜 날아가기도 한다. 규칙은 규칙대로 어기고 실제론 비거리 손해까지 보기도 한다는 얘기다. 날림으로 만들다보니 코어가 정 가운데 있지 않아서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져 날아가기도 하고.
프로 골퍼 김용준(KPGA 경기위원 &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