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修球初心)]은 김용준 전문위원이 풀어가는 골프 레슨이다. 칼럼명은 '여우가 죽을 때 고향 쪽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뜻인 고사성어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살짝 비틀어 정했다. '머리 수(首)'자 자리에 '닦을 수(修)'자를 넣고 '언덕 구(丘)'자는 '공 구(球)'자로 바꿨다. 센스 있는 독자라면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그 뜻을 알아챘을 것이다. ‘처음 배울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골프를 수련하자’는 뜻이라는 것을. 김 위원은 경제신문 기자 출신이다. 그는 순수 독학으로 마흔 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골퍼가 됐다. 김 위원이 들려주는 골프 레슨 이야기가 독자 골프 실력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4라운드짜리 대회에서 1, 2 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이글 또는 알바트로스를 한 개라도 기록한 선수는 무조건 컷 오프를 통과시킨다'고 가정해 보자. 1, 2 라운드 합산 점수로 따진 순위에 관계 없이 말이다.
아니면 이글이나 알바트로스에 가산점을 준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이글은 기준보다 두 타 적게 친 것이지만 보너스를 줘서 기준보다 세 타 덜 친 것으로 치는 대회라면 말이다. 알바트로스는 기준보다 세 타 적은 것인데 네 타 적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런 대회가 있다면 코스 공략 방법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어떻게 달라지느냐고? 같이 상상해 보면 어떨까? 나 같으면 파5 홀은 무조건 투 온을 노릴 것이다. 1, 2 라운드 이틀 동안 여덟 개 파5 홀에서 이글을 한 개만 잡으면 컷 오프를 통과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파5에서 다 죽고 딱 한 번만 투 온을 시켜서 원 퍼팅에 마무리 해도 '남는 장사'일 수도 있으니.
설령 파5에서 투 온을 노리려면 물 건너 직접 그린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라도 주저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반 한 홀과 후반 한 홀에서 드라이버 샷 비거리를 측정해 상위 10위 까지는 타수로 따진 성적에 관계 없이 통과시킨다거나.
이런 대회를 본 적 있는가? 공식 대회 중에서?
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물론 비슷한 경기 방식이 있기는 있다. 골프 규칙에.
또 다른 경기방식 중 하나인 ‘스테이블 포드’라는 경기 방식이다.
스테이블 포드는 위원회가 정한 홀 별 목표 타수와 선수가 친 타수를 비교해 점수를 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파를 기록하면 3점을, 버디를 기록하면 5점을 주기로 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해 18홀 동안 얻은 점수를 합산해 점수가 제일 높은 선수가 우승자다.
골프 규칙에는 엄연히 있는데도 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프로 대회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선수들이 크게 다른 전략으로 플레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느닷없는 얘기를 하느냐고?
'골프란 무엇인가'를 얘기하려고 그런다.
나는 ‘골프란 골프 클럽으로 골프 볼을 한 번이라도 덜 쳐서 홀에 집어 넣는 경기’라고 정의하고 싶다. 더 기가막힌 샷을 많이 한 선수가 이기는 경기가 아니라. 더 멀리 치는 선수가 이기는 경기도 아니고.
이런 정의를 얻게 된 것은 내가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한참 지나서다.
그 전까지 나는 주로 남보다 멀리 치는 것을 골프라고 이해했다. 점수는 좋거나 말거나 말이다.
주변에서 한가락 한다고 추어올려서 우쭐할 때는 그런 골프도 제법 멋져 보였다. 그런데 조금 무대를 넓히자 '천만의 말씀'이었다.
우악스럽게 덤비는 내 골프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골퍼들을 잇따라 만난 것이다.
그들은 나보다 멀리 치지 못했다. 아니 더 멀리 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더 멀리 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점수는 항상 나보다 더 좋았다. 내가 안간힘을 쓸수록 점수 차이는 더 벌어지곤 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왜 이러지 하고 말이다.
그리곤 골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내가 한참 동안 잠도 잘 못 자고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은 바로 ‘골프는 타수를 가리는 경기’라는 것이다.
그랬다. 골프는 타수였다.
누가 더 적은 타수로 홀을 끝내느냐? 누가 더 적은 타수로 18홀 전체를 마무리 하느냐?
더 적은 타수를 위해 퍼팅을 잘 해야 했다. 더 적은 퍼팅수를 기록하기 위해 어프러치도 잘 해야 하고 아이언 샷도 좋아야 하는 것이다. 더 좋은 아이언 샷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좋은 자리로 더 멀리 드라이버 샷을 보내야 하고.
이 말이 와 닿는 골퍼라면 이미 상급자일 활률이 높다. 아니면 곧 상급자가 될 골퍼이거나.
아직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기본기를 충분히 연마하기 전에 골프 전체를 돌아보기는 어려우니까.
골프가 이런 것이니 골프 연습도 그에 맞춰야 한다.
진짜 연습이란 더 적은 타수로 한 홀 혹은 18홀을 마치는 데 필요한 기량을 연마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자는 골프는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가?
석 달간 이어온 수구초심 시리즈를 9회로 마친다.
김용준 프로 & 경기위원(KP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