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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골프]경기위원(Refree)이란 뭐 하는 직업인가?

  • 2020.03.03(화) 08:00

경기위원은 심판이자 대회 진행자
코스에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 들어가

대회를 눈 앞에 두고 폭설이 쏟아졌다면?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경기위원회라도 막막할 수밖에 없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죽을 힘을 다해 코스를 정리해서 대회를 치르려고 노력하는 수 밖에. 사진은 지난 2019년 KPGA 첫 대회인 동부화재 푸르미오픈 대회 첫 날 새벽 상황이다. 눈이 쌓여 도저히 치르지 못할 것 같던 이날 경기는 어떻게 됐을까? 모두 달라붙어 눈을 쓸어낸데다 날씨도 갑자기 포근해지면서 눈이 다 녹아 결국 치러냈다. 기적같이.

‘경기요원’은 뭐 하는 직업인가요?

내가 이따금 받는 질문이다. 직업이 ‘경기위원’이라고 하면 ‘경기요원’으로 잘못 알아듣고 묻는 말이리라. 경기요원이냐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다. 간호사에게 간호원이냐고 하면 굳이 간호사라고 바로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직업마다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의 긍지가 있지 않겠는가? 이름에는 그 긍지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다시 한 번 정확히 말하면 내 직업은 ‘경기위원’이다. ‘경기진행요원’이 아니고.

이제 질문을 고쳐서 제대로 해 보자. 경기위원은 뭐 하는 직업인가?

그 답은 경기위원을 영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말하면 알기 쉽다.

경기위원을 영어로는 레프리(refree)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심판'이다.

어떤가? 경기위원이 뭐 하는 직업인지 금새 와닿지 않는가?

경기위원은 심판에 경기운영자 역할까지 더한다. 굳이 영어를 또 쓰자면 토너먼트 어드미니스트레이터(Tournament Administrator)다.

그러니까 경기위원은 선수가 경기할 판을 짜고 그 판에서 시합이 열릴 때 심판까지 보는 직업인 것이다.

TV 중계를 보거나 갤러리로 간다면 묵직한 표정으로 카트를 타고 부리나케 코스를 오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목에 명찰과 스톱워치를 걸고 무전기를 들거나 이어셋을 낀채 말이다. 선수들은 잔디밭을 다 걷는 데 가끔은 잔디밭에도 카트를 몰고 들어가는 얼핏 보기에 무뢰한(?) 같은 사람 말이다. 바로 그가 경기위원이다.

경기위원은 대회 당일에만 일하는 것이 아니다. 대회가 열리기 한참 전부터 그 코스를 꾸민다. 잔디 가꾸고 나무 심고 벙커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코스를 어떻게 세팅할 지 결정하는 일부터 경기위원이 맡는다. 혼자서는 어림 없는 일이기 때문에 경기위원이 모인 경기위원회가 그 일을 담당한다.

자주 가던 골프장 세팅이 큰 대회를 한 번 치르고 나서 크게 바뀌었다면 경기위원이 손을 댄 것이 틀림 없다. 평소 아웃 오브 바운즈(OB)이던 자리가 패널티 구역으로 바뀌었거나 빨간 말뚝이 있던 자리에 노란 말뚝이 꽂혀 있는 경우 등이 그렇다. 혹시 그렇게 바뀌었다면 새로 바꾼 쪽이 골프 규칙에 더 맞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기존 세팅은 골프장이 운영 편의를 위해 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 대회라면 매 홀 '홀(핀) 위치'도 경기위원회가 정한다. 흔히 핀 위치가 고약하면 ‘그린 키퍼가 어젯밤에 부부싸움을 했나 보다’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한다. 공식 대회라면 그 자리는 그린 키퍼가 정한 것이 아니다. 경기위원회가 정한 것이지. 참고로 경기위원은 절대 그 때 그 때 기분으로 핀 위치를 정하지 않는다. 혹시 부부싸움을 하고 왔다고 해서 ‘너희들도 죽어봐라’는 식으로 핀 위치를 정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진짜냐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한다. 진짜다.

경기위원회가 핀 위치를 정할 때는 원칙이 있다. 어려운 자리와 보통 자리 그리고 조금 쉬운 자리를 골고루 섞는 원칙 말이다. 또 왼쪽과 오른쪽과 가운데도 고르게 배치한다는 원칙도 있다. 여러 날 경기를 할 때는 날마다 난이도를 조절해서 더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물론 이 때 경기위원회 대장인 경기위원장의 철학이 큰 영향을 미친다.

아주 어렵게 세팅해서 기량이 최고로 뛰어난 선수가 우승을 하게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위원장도 있다. 어떤 대회는 갤러리와 시청자를 위해 버디가 훨씬 더 많이 나오도록 쉽게 세팅을 하자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미국골프협회(USGA) 같은 경우는 유에스 오픈(US Open)에서 언더파 우승이 나오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코스 세팅을 무지막지하게 하는 걸 보면. 흐흐. 그런데도 그 코스에서 꼭 언더파를 치는 선수가 몇 명 나오지만.

본 대회를 시작하면 경기위원은 심판 역할을 맡는다. 규칙을 어긴 선수에게 벌타를 주기도 하고 반칙을 심하게 한 경우엔 실격을 시키기도 한다. 경기위원 맘대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골프 규칙에 나와 있는 대로 처분을 하는 것이다.

규칙이 버젓이 있는데 굳이 심판이 필요하냐고? 골프는 신사나 숙녀가 하는 스포츠라면서?

그렇다. 필요하다. 선수 대부분이 신사이거나 숙녀다. 그런데 가끔 얕은 꾀나 부정한 행동으로 이득을 보려는 악당이 있다.

대회에서는 선수끼리 서로 감시한다. 마커라는 제도가 있는 것이다. 선수 A가 선수 B를 마크한다면 선수 A는 선수 B가 혹시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지도 감시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선수끼리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넓은 코스에서 경기하는 동안 일일이 다른 선수를 따라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둘이서 짜고 치기라고 하는 경우(합의의 반칙)에는 꼼짝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위원이 있는 것이다. 코스 곳곳에. 공식 대회는 한 경기에 일곱 여덟 명쯤 근무한다. 보통 세 홀에 한 명씩 경기위원이 있다고 보면 맞다. 선수가 찾으면 후다닥 카트를 몰고 나타난다. 별 일 없을 때는 높은 곳에 올라고 이리 저리 살피면서 시합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감독한다. 뭔가 꺼림직한 경우에는 메모해 놓고 나중에 따져 보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큰 부정행위를 적발할 때도 있다.

이런 경기위원이 몇 명이나 되냐고?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칠십 명 안팎 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도 쉰 명 남짓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대한골프협회에(KGA)에 몇 십 명 정도가 있다. 이 밖에도 다른 골프 단체에 경기위원이 있다. 그래도 ‘직업으로서 경기위원’이라고 말할만한 경우는 KPGA와 KLPGA 그리고 KGA 세 곳 소속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다.

경기위원이라고 하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경기위원은 보수가 어떠냐는 질문이다. 이럴 때는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황정민 분)이 한 말을 들려줄 수 밖에 없다. 속어가 섞여 있는 것은 이해하기 바란다. 영화 대사 아닌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참. 내가 올해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이 된 것을 까먹고 말 안 할 뻔 했다.

며칠 전 난 우리 협회(당연히 KPGA다) 인사발령에서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으로 위촉됐다.

그렇다. 나는 올해부터 TV로 중계하는 대회에서 심판을 보게 된 것이다.

신나냐고? 진심으로 어깨가 무겁다.

나는 지난해까지 2년간 KPGA 제1지역 경기위원으로 발바닥에 땀나게 일했다. 그렇더라도 더 큰 대회 심판을 맡게 되니 긴장을 안 하겠는가?

그래도 나는 믿는 구석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협회 경기위원장과 팀장들, 그리고 여러 선배 경기위원이 있기 때문이다.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 & 프로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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