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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롯데]① 국민정서법을 건드리다

  • 2015.08.05(수) 14:45

일본말로 대화하는 父子, 국적논란 불지펴
"국민정서 읽지 못하고 싸우기만 한다" 질타

가족간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롯데그룹이 거센 역풍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곳이 일본 롯데홀딩스라는 점이 부각되며 기업의 국적 논란이 제기되고 정치권에선 "경제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재벌이 찬물을 끼얹었다"며 질타가 쏟아졌다. 국세청은 롯데그룹의 광고회사인 대홍기획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형제간 다툼에 국민적 비난여론까지 더해져 롯대그룹이 내우외환의 처지에 몰렸다. [편집자]


이번 사태에서 국민정서를 건드린 건 역설적이게도 지난달 30일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고 나선 방송 인터뷰가 계기가 됐다. 당시 신 전 부회장은 '동생을 해임한다'는 내용의 아버지 서명이 담긴 문서를 공개했다. 그런데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롯데가(家)의 장남이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에 의아해했다.

다음날 공개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대화내용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동생(신동빈)을 그만두게 한 것은 아버지(신격호)의 뜻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신 전 부회장이 제시한 음성녹음 파일에서 부자(신격호·신동주)는 시종일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대화 속에서 동생인 신 회장은 일본 이름인 '아키오(昭夫)'로 지칭됐고 아버지 신 총괄회장은 '오또상(おとうさん·일본어로 아버지)'으로 불렸다.

이 때를 기점으로 롯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시청자들은 "롯데가 껍데기만 한국기업 아니냐", "한국에서 돈을 벌어 일본으로 가져가는 기업" 등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를 일본과 가깝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방송을 본 뒤 '정말 그렇구나'라고 느낀 것"이라며 "형과 동생,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국민정서를 건드린 게 롯데로선 뼈아픈 일이 됐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이 지난 2일 한국인 부인 조은주 씨와 함께 방송에 등장해 우리말로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머리를 숙였지만 한번 각인된 '롯데=일본기업'이라는 인상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 부인 조은주 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KBS 화면 캡처)


다음날 경영권 다툼의 당사자이자 동생인 신 회장이 김포공항에서 언론 앞에 섰을 때도 당혹감을 나타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신 회장은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일본어 억양을 지우지 못했다. 그가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허리 숙여 사과한 것을 두고도 일본식 인사법 '사이케이레이(최경례·最敬禮)'라며 못마땅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술 더 떠 일본 네티즌들은 "롯데는 한국기업"이라는 신 회장의 언급을 두고 롯데 불매운동을 얘기하고 있다.

 

기업위기관리 전문가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평소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던 두 형제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였을 때 국민들이 받는 충격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며 "법률적 문제와 가족간 문제로 여긴 채 국민정서를 읽지 못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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