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제과의 2대주주로 올라설 전망입니다. ㈜롯데는 지난 9일 롯데제과 주식 11만2775주(7.93%)를 이달 28일까지 공개매수하기로 했습니다. ㈜롯데는 이달초 롯데제과 주식 2만9365주(2.07%)를 누군가로부터 사들였는데요. 이 지분과 공개매수 지분을 합하면 ㈜롯데는 롯데제과의 주식을 최대 14만2140주, 지분율로는 정확히 10.00%까지 보유하게 됩니다.
공시 규정상 지분 10% 이상 보유하면 '주요 주주'가 됩니다. 이 경우 ㈜롯데는 롯데제과의 주식 단 1주의 변동이라도 생기면 그 내용을 공시해야 합니다. 주식시장의 깐깐한 감시영역에 들어오는 셈이죠. 따라서 이번 공개매수 선언은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일본 롯데그룹이 한국 자본시장에 공식적으로 발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 스스로 걸어나온 ㈜롯데
㈜롯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롯데는 공개매수 대상회사인 롯데제과와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일본을 기반으로 하는 제과업체입니다.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공개매수 대상회사의 지분을 추가 취득해 향후 롯데제과와 제과분야에서 사업협력을 강화해 시너지 효과를 제고할 계획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사업협력이 목적이었다는 겁니다. 경영권 방어나 인수합병(M&A), 지주회사 요건충족, 상장폐지 등 일반적인 공개매수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입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롯데의 해외매출은 한국 롯데제과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롯데제과의 폭넓은 유통망을 활용하면 해외시장 진출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 공장 대신 주식을 택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요? 해외시장 확대가 목적이라면 롯데제과 지분 매입 말고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롯데가 롯데제과 지분 10% 확보를 위해 쏟아붓는 돈은 총 3270억원(2.07%+7.93%)에 달합니다. ㈜롯데 자기자본(지난해말 현재 1조2073억원)의 4분의 1이 넘는 금액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롯데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현지공장과 판매망을 가동 중인데요. ㈜롯데가 이 두 나라에서 사업을 하려고 투자한 금액(자본금)은 우리돈 1600억원(편의상 10일 환율을 기준으로 계산)이 조금 넘습니다. 한국 롯데제과 지분 10%를 사들이는데 쓸 돈이면 '태국+인도네시아' 같은 시장 2곳에 더 진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롯데는 이를 포기하고 롯데제과 주식을 사들이기로 했습니다. 더구나 이 돈은 롯데제과에 유입돼 사업확대에 쓰일 돈도 아닙니다. 기존 롯데제과 주주들과 손바뀜만 있을 뿐이죠.
▲ 신동빈(사진) 롯데그룹 회장에게 ㈜롯데는 우군으로 등장했다. |
◇ 12월31일은 왜 중요한가
㈜롯데가 롯데제과 주식을 공개매수하는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롯데는 12월28일까지 공개매수 신청을 받아 12월31일 대금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이 때(12월31일)를 기점으로 공개매수로 사들인 롯데제과 주식의 소유권이 ㈜롯데로 바뀝니다.
12월31일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롯데제과 정관상 매년 3월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12월31일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내년 3월은 롯데제과 이사회 멤버 9명 중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포함해 총 6명의 임기가 끝납니다. 신 회장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12월31일 주주명부에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지분이 최대한 많아야 합니다.
만약 신동빈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의결권을 모아 이사회를 장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롯데제과는 물론이고 한국 롯데그룹의 핵심계열사들이 신 전 부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도미노처럼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빼앗길수 없는 롯데제과
롯데제과는 롯데그룹의 모태기업인 만큼 그룹내 여러 핵심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요. 현재 롯데칠성(19.29%), 롯데푸드(9.32%), 롯데리아(13.59%), 롯데닷컴(8.54%), 롯데정보통신(6.12%), 코리아세븐(16.5%) 등의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롯데제과는 롯데그룹의 가장 큰 상장사이자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롯데쇼핑의 지분을 보유한 곳입니다. 만약 롯데제과가 신 전 부회장 손에 들어가면 롯데쇼핑 전체 의결권의 4분의 1(신동주 13.45%+롯데제과 7.86%+롯데제과가 최대주주로 있는 롯데칠성 3.93%)이 당장이라도 신 전 부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놓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난달 초 신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롯데쇼핑 주식 가운데 5분의 1(80만주)을 시중은행에 담보로 내놓고 빌린 돈으로 롯데제과 주식 3만주(2.11%)를 늘린 것도 따지고보면 롯데제과는 형(신동주)에게 절대 빼앗길 수 없는 보루와 같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롯데제과를 내주면 다른 계열사들까지 그 충격파가 연쇄적으로 전달될 것을 걱정한 것으로 볼 수 있죠.
◇ 모습 드러낸 신동빈의 지원군
실제 주식시장에선 ㈜롯데만 아니었다면 신 전 부회장이 동생과 붙어볼 만한 싸움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 전 부회장 편에 설 수 있는 주주로는 아버지(신격호), 누나(신영자), 누나가 이사장으로 있는 롯데장학재단이 거론됩니다 이 주식을 모두 모으면 신 전 부회장은 롯데제과 의결권 22%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여기에서 롯데제과 지분 10%만 더 확보해도 그는 동생측 지분(31.5%)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롯데가 등장함으로써 이런 구도가 깨졌습니다. ㈜롯데가 계획대로 공개매수를 완료하면 신 회장측의 롯데제과 지분율은 40% 이상으로 높아집니다. 기존에는 10%포인트 정도에 불과하던 형제간 지분율 차이가 ㈜롯데가 나타나면서 확 벌어진 겁니다.
그렇다면 신 전 부회장이 지금이라도 내년 정기주총을 겨냥해 롯데제과 지분을 사들이면 되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하기엔 신 전 부회장이 감당해야할 자금부담이 크고 시간 또한 촉박합니다.
◇ 손발 묶인 신동주
공개매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주당 얼마의 가격으로, 어느 정도의 물량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겠다는 공개적인 약속입니다. 경영권 변동이나 주가와 직결된 사안이다보니 투자자 보호를 위해 까다로운 조건이 붙습니다.
예를 들어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40조는 공개매수를 하는 주체와 그 특별관계자 등은 공개매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구요.
㈜롯데가 제출한 공시를 보니 신 전 부회장은 동생인 신 회장과 함께 ㈜롯데의 특별관계자로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신 총괄회장과 신 이사장도 특별관계자로 분류돼있구요. 이 공시대로라면 신 전 부회장은 롯데제과 지분을 늘리고 싶어도 공개매수기간인 12월28일까지는 현행법상 늘릴 수가 없습니다. 물론 공개매수가 끝난 뒤 12월29일과 12월30일에 살 수도 있지만(12월31일은 휴장), 이렇게 되면 주주명부에 등재되는 시기(D+2일)는 내년으로 넘어갑니다. 올해 3월 정기 주총에선 힘을 쓸 수 없다는 얘깁니다.
▲ 신동주(사진) 전 부회장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
◇ '반격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신 전 부회장도 공개매수라는 방법을 택하면 되는데요. 현행법에는 대항공개매수라는 게 있습니다. 상대방의 공개매수를 무산시키려고 본인도 공개매수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신 회장은 롯데제과 지분 3만주를 사기 위해 롯데쇼핑 주식 80만주를 담보로 잡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신 전 부회장 역시 롯데쇼핑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롯데제과 주식을 주당 320만원에 공개매수한다고 가정해보죠. 실제로는 공개매수 가격을 더 높게 불러야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계산하겠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롯데제과 지분 7.93%를 손에 넣으려면 약 2600억원(롯데제과 11만2775주*320만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신 전 부회장의 롯데쇼핑 지분가치는 약 9600억원(롯데쇼핑 423만주*10일 롯데쇼핑 종가)인데요. 주식의 담보인정비율을 50%로 할 때 신 전 부회장은 총 4800억원을 빌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롯데제과 주식 2600억원어치를 사려면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의 롯데쇼핑 지분 절반 이상을 담보로 잡혀야 가능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적지 않은 부담이죠.
◇ 신동빈은 알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입니다. 대항공개매수에 성공하더라도 최소 공개매수기간(20일)을 생각하면 올해 안에 신 전 부회장이 롯데제과 주주명부에 등재되기는 어렵습니다. 가령 오늘(12월11일) 공개매수를 시작하면 12월30일에 공개매수가 끝나는데요. 대금결제기간(D+2일)을 감안하면 주주명부에 등재되는 시기는 내년으로 넘어갑니다. 결국 막대한 돈을 투입했음에도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신 전 부회장에게는 상처 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롯데도 이 같은 점을 노리지 않았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롯데제과 대표이사와 ㈜롯데의 등기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신 회장은 ㈜롯데의 의도를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롯데의 공개매수신고서를 보면 "신 회장은 공개매수자의 임원 자격에서만 본 공개매수에 관여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 한일 롯데의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는 신격호(가운데) 총괄회장는 이번 ㈜롯데의 공개매수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 신의 한수일까 자충수일까
신 전 부회장은 미처 대응할 시간을 갖지 못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의 편에 아버지(신격호)가 있고, 아버지도 동생(신동빈)처럼 롯데제과와 ㈜롯데의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공개매수신고서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신 총괄회장을 포함한 공개매수 대상회사의 다른 대표이사나 등기이사들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본 공개매수신고서 제출 직전 또는 공개매수신고서 제출을 통해서 고지 받았습니다."
신 회장은 그간 "가족과 경영은 분리해야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쉽게 말해 공과 사를 구분하자는 건데요. 하지만 자신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는 이 같은 경영철학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신 회장은 이번 일로 ㈜롯데의 돈을 자신의 지배력 확대에 썼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국내에서 일본 롯데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구요. 얻는 것 못지 않게 잃는 것도 생각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