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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면 '바람'…농심, 결실 거두는 웰빙 투자 10년

  • 2020.02.26(수) 09:36

2007년부터 생산했지만 부진하던 웰빙제품
새우탕·신라면 등 기성품 활용전략 성공적
부산 녹산공장 가동률 13%→34% 상승세

농심은 스테디셀러가 많다. 라면은 부동의 1위 신라면과 안성탕면, 너구리, 짜파게티 등이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고, 과자시장에선 새우깡과 양파링, 자갈치, 꿀꽈배기 등이 스테디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입맛은 쉬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농심은 스테디셀러 제품 덕분에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농심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최근 농심은 신라면건면과 짜왕건면 등 건면 라인업을 강화하는 중이다. 라면시장은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유탕면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쌀면이나 건면 등 다양한 시도는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하지만 최근 농심의 신제품을 접한 뒤 건면도 먹을만하다는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

농심의 최근 건면 제품은 기존 스테디셀러의 후광을 누리고자 하는 틈새상품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 배경엔 10년이 넘는 투자의 성과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농심의 투자는 부산에 있는 녹산공장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녹산공장은 지난 수년간 농심의 '계륵'이었다.

농심 녹산공장은 지난 2007년 장수식품 전용 생산공장으로 부산 강서구에 문을 열었다. 농심은 녹산공장을 통해 '건면세대'라는 용기면 시리즈를 내놓고, 마케팅을 벌였다. 김치맛, 쇠고기맛 뿐만 아니라 치즈, 청국장, 짬뽕 등 특이한 맛을 가미한 실험적인 제품이었다.

이후 녹산공장을 통해 후루룩국수와 후루룩짜장면, 후루룩카레면, 후루룩소고기짜장면 등 후루룩 시리즈와 뚝배기 설렁탕, 둥지냉면 등을 선보이며 웰빙면 문화를 주도하려는 시도를 했다.

특히 농심은 녹산공장 가동 초반 건면보다는 쌀면의 대중화를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500억원 이상을 쌀제품 개발에 투자하면서 쌀 함량 90%인 둥지쌀국수 시리즈를 선보였다. 과자시장에서도 쌀새우깡을 선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시도는 실패했다. 녹산공장은 처음 문을 연 2007년 1분기만 해도 47.6%의 가동률로 승승장구했다. 연간 기준으로 가장 높은 가동률을 보인 시기는 2009년으로 35.3%다. 이후 2015년에는 13%까지 떨어졌다. 

가동률이 떨어지더라도 농심은 녹산공장의 웰빙 기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구멍 뚫린 면(Rice Tube면)' 제조 기술을 활용한 '볶음쌀면', 메밀과 감자전분을 건면으로 만든 '태풍냉면', 쌀 함유량을 80%로 늘린 '떡국면' 등을 내놓았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심지어 증설도 했다. 농심은 지난 가동률이 20%를 밑돌던 2011년 녹산공장에 300억원을 들여 쌀 전문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목표는 녹산공장 생산제품의 매출을 1000억원까지 늘리는 것이었다.

목표는 또 실패했다.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농심 녹산공장의 매출은 2010년 703억원을 기록한 뒤 줄곧 하락했다.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2015년 녹산공장의 매출은 375억원에 불과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라면과 과자는 전국민이 아는 그 맛이 있다"며 "맛이 조금만 달라져도 '변했다'며 고객이 떠나는 상황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맛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녹산공장의 부진을 겪은 농심은 건면과 쌀면으로 통해 시장에 없던 전혀 새로운 맛을 선보이는 것은 보류한다. 대신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맛을 건면을 통해 구현하는데 집중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다. 웰빙기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게 먹혔다.

우선 선보인 것은 용기면 업계에서 인기가 놓던 새우탕이다. 농심은 2018년 새우탕을 건면으로 바꾸어 봉지라면으로 출시했다.

건면새우탕은 업계 최초로 개발한 '발효숙성면' 제조기술을 적용해 1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쳐 선보인 제품이다. 광고모델로는 아직도 인기가 높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나섰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의 먹방에 자주 등장하면서 신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서 나온 비장의 무기는 신라면건면이다. 연구기간은 2년이 넘는다. 면과 스프, 별첨, 포장 등 라면개발 전 부문을 새로 연구해 신라면의 맛을 다시 만들었다.

신라면건면은 출시 1년만에 국내에서만 약 6000만봉이 팔리면서 농심의 실적을 지지했다. 지난해 오뚜기와 삼양, 팔도 등에서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하며 농심의 50% 점유율을 깨려고 시도했는데 농심이 수성에 성공한 것은 건면의 돌풍 덕분이라는 금융투자업계의 분석도 나왔다.

건면의 가장 큰 특징은 낮은 지방함량이다. 건면새우탕과 신라면건면 모두 기존 제품보다 지방의 함량이 낮다. 건면새우탕의 한 봉지에는 3.2g의 지방이 들어있다. 일 권장량의 7% 수준이다. 반면 새우탕컵면 1개에는 11g의 지방이 포함된다. 일 권장량의 23.9%에 달한다.

신라면건면은 한 봉지에 3.5g(일권장량 7.6%), 기존 신라면에는 한 봉지에 16g(일권장량 34.8%)의 지방이 들어있다. 지방이 적으니 기존 제품보다 칼로리도 낮다. 평균적으로 같은 중량이면 건면이 20%가량 칼로리가 낮다. 

가장 최근에 나온 농심의 건면 제품은 짜왕건면이다. 다른 건면과 마찬가지로 지방함량과 칼로리는 낮췄다. 짜왕건면의 반응도 심상찮다. 아직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량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시장의 평가는 뜨거운 편이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한때 낮은 가동률로 속을 썩이던 녹산공장의 가동률도 상승세다. 지난 2017년 21.1%였던 녹산공장 가동률은 지난 건면새우탕을 뽑아내던 2018년 23.7%로 소폭 상승한 뒤 신라면건면이 인기를 끈 지난해에는 3분기 기준 34.2%까지 올라갔다. 

인기에 힘입어 녹산공장 증설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농심은 녹산공장 건면라인을 6개에서 8개로 증설했다. 일 생산량도 최대 200만개로 늘어난다. 신제품 추가와 수출도 염두에 둔 투자다.

농심 관계자는 "오랜 투자가 결실을 맺고 있다"며 "단순히 매출 상승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고객의 건강도 생각한 웰빙에 대한 투자라는 점에서 더 큰 사랑을 받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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