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역시 한국인은 치킨에 진심이었습니다. 하나의 음식을 두고 이렇게 수많은 논쟁을 벌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당사자들이 라디오 방송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여론은 찬반으로 나뉘어 들끓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치킨은 작고 맛이 없는 것일까요.
이번 논쟁을 촉발한 당사자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입니다. 황 씨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연일 "한국 치킨에 쓰이는 닭이 작고 맛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이 주목받자 언론은 이를 집중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대한양계협회가 강도 높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헛소리', '오만방자' 등 원색적인 단어를 써가며 황 씨를 비판했습니다.
논쟁은 복잡합니다. 덕분에 치킨에 대해 더욱 깊이있게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국 치킨은 대부분 1.5㎏ 크기의 닭으로 만듭니다. 30일간 키운 '육계'입니다. 반면 미국 등 해외에서는 40일간 기른 2.8㎏ 내외의 대형 육계를 즐겨 먹습니다. 여기까지는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실제 국내 대부분 치킨 업체가 10호 닭(951~1050g)을 쓰고 있습니다. bhc와 BBQ는 물론 교촌에프앤비도 마찬가지입니다.
황 씨는 1.5㎏의 작은 닭이 "맛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이런 주장을 해왔습니다. 약 6년 전인 지난 2015년에도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닭을 더 오래 키워야 크고 맛있는 고기가 되는데, 일찍 닭을 잡아버리니 고기가 맛이 없다는 겁니다. 또 이렇게 작은 닭을 만드는 건 사육 업체나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입니다.
황 씨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지난 2016년 농촌진흥청이 발간한 '육계 경영관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에는 명확하게 "국내 닭고기 시장은 1.5㎏의 소형 닭 위주로 생산된다"며 "맛 관련 인자가 축적되기 이전에 도계하기 때문에 맛없는 닭고기가 생산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반면 양계협회와 치킨 업체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비용 등의 이유에서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작은 닭'이라는 주장입니다. 양계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작은 닭이 맛이 없다고 비아냥거리는데 소비자가 원하는 크기라는 것은 왜 말하지 않는 건지 변명하라"며 황 씨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작은 닭은 맛이 없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들도 근거가 있습니다. 2012년에 나온 자료인데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연구원에서 '한국 가금학회지'에 기고한 연구서입니다. 이 자료에는 사육이 길어질수록 닭고기 맛에 영향을 미치는 아미노산 중 글루탐산(glutamine acid)이 감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양측 모두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셈입니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일단 황 씨의 주장의 경우 '맛'이 있고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맛이란 것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닭고기 맛에 관한 상반된 연구 결과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작은 닭고기라 맛이 없다'고 단정하니 건설적인 논의보다는 논쟁만 불러일으킨 셈이 됐습니다.
게다가 황 씨가 지적하는 건 사실 '생닭'입니다. 생닭을 단순히 굽거나 삶는 음식을 두고 비교한다면 맛의 우열을 평가하는 게 수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치킨은 다릅니다. 치킨의 경우 생닭에 온갖 조리를 더해 만든 음식입니다. 염지부터 시작해 기름에 튀기고 강한 양념까지 더 한 음식입니다. 소비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치킨을 좋아하는데, 단순히 생닭만으로 '치킨이 맛없다'고 하니 쉽게 동의할 수가 없는 겁니다.
양계협회나 치킨 업체 측 주장에도 허점이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로 과연 작은 닭만을 선호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황 씨는 이 점을 집요하게 지적합니다. 이른바 '영계 마케팅'에 소비자들이 속고 있다는 건데요. 사실 작은 닭만 연하고 맛있다는 건 '업자'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사실 황 씨의 말처럼 조금 더 큰 닭으로 만들어도 치킨이 맛있다면, 그 맛이 궁금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큰 닭으로 튀긴 치킨을 먹어본 경험이 없습니다. 치킨의 크기는 원래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황 씨는 이번 논쟁이 정치권으로까지 확대해 실제 산업의 변화를 끌어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계협회는 물론 치킨 업체들은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이미 산업의 구조는 물론 소비자들의 선호 역시 굳어진 상황에서 개인의 의견만으로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황 씨가 수년 전부터 내놨던 "한국 치킨은 맛없다"는 주장을 다시 한번 꺼내든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교촌 치킨이 치킨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한국의 육계 회사와 치킨 회사는 소비자에게 작고 비싼 치킨을 먹여 재벌이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치킨값 인상이 다시 한번 우리를 들끓게 한 셈입니다.
양측 모두 한발씩 물러서 보는 건 어떨까요. 황 씨는 "맛없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하기보다 "우리나라도 치킨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떨까요. 업체들과 양계 업계도 다양한 크기와 맛의 치킨을 생산하는 노력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논쟁이 아닌 논의가 될테니까요. 아무튼 이번 논란은 한국인들의 치킨 사랑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 계기가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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