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피자는 구하기 쉽고 먹기도 편한 음식입니다. 배달앱만 열어봐도 수많은 피자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10분만 돌리면 먹을 수 있는 냉동피자도 많죠. 맛도 상향평준화돼 있습니다. 쫄깃한 치즈에 토핑도 다양해서 식감도 좋고요. 더불어 양까지 넉넉해 라지 피자 한 판이면 온가족이 간단히 한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피자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언제부턴가는 피자를 먹을때마다 주변에서 '눈총'도 같이 먹고 있지만요. 살이 쪘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피자를 먹다 보면 너무 익숙해서 지나치는 특징이 있습니다. 피자는 대부분 동그랗습니다. 디트로이트 피자처럼 네모난 모양도 가끔 있지만 원형이 대세입니다. 피자뿐만 아니라 빈대떡 등 여럿이 먹을만한 음식 대부분이 원형입니다. 원형이 아닌 음식은 대부분 '핑거 푸드'입니다. 과자나 초콜릿처럼 한 번에 집어먹을 수 있는 작은 제품이 대표적이죠. 그럼 '같이 먹을만 한 음식'은 왜 둥근 모양인 경우가 많을까요. '고메' 냉동피자를 만드는 CJ제일제당에 물었습니다.
답변은 허무했습니다. 피자가 동그랗게 만들어진 이유를 적은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비슷한 이야기도 없고요. 추측만 할뿐이라고 하는데요. 일단 피자를 만드는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볼까요. 반죽을 손바닥으로 빙빙 돌리는 피자 요리사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가끔 반죽을 공중으로 돌리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죠. 이런 반죽 제조과정에서 원심력이 작용한다는 설명입니다. 돌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그랗게 됐다는 이야기죠.
피자를 구울 때도 원형이 효율적입니다. 아래 이미지를 한 번 살펴볼까요. 원은 중심부터 모든 변까지의 거리가 같은 도형입니다. 반면 사각형은 각 변이나 모서리까지의 거리가 모두 다릅니다. 삼각형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때문에 원형은 어떻게 구워도 열이 모든 면에 균일하게 전달됩니다. 아시다시피 피자는 화덕에 굽는 음식입니다. 아래에서 열이 잘 전달돼야만 합니다. 당연히 원형이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만들 수 있는 모양일 겁니다.
나눠 먹을때도 비슷합니다. 피자의 중심을 기준으로 네 조각을 만든다고 가정해볼게요. 네모난 피자를 네 조각으로 나누면 가장자리 빵 '크러스트'가 직각 형태로 잘립니다. 때문에 손에 쥐고 먹을 때 애매합니다. 가운데를 파먹다 보면 토핑이 입가에 묻습니다. 특히 크러스트를 따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네모 피자는 '고통'입니다. 포크와 나이프가 없다면 크러스트를 떼내기부터가 어려우니까요. 반면 원형은 어떻게 나눠도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피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피자가 왜 둥근지 더 이해가 갑니다. 현대 피자의 원형 '나폴리탄 파이'는 18세기 이탈리아 서민의 '구휼 음식'이었습니다. 당시 주요 재료인 토마토는 '악마의 작물'로 취급받았죠. 상류층은 피자를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왕도 이런 문화를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당대의 '숨은 피자 덕후', 이탈리아 왕 페르디난도 1세의 일화입니다. 그는 평민으로 변장하고 빈민가에 몰래 숨어들어 피자를 먹었습니다. 아내와 귀족의 눈치를 보느라고요.
구휼 음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양'입니다. 싸고 간편하게 많이 만들 수 있어야 하죠. 피자도 같은 크기에서 최대의 양을 뽑아내야 했습니다. 원형은 이런 음식에 안성맞춤인 도형입니다. 둘레가 같은 도형 중 면적이 가장 넓거든요. 자연스럽게 당시 이탈리아 피자 요리사들은 원형을 선택하게 됐을 겁니다. 서민 음식이라 멋을 낼 필요도 없는 데다가, 효율성까지 높으니까요. 그렇게 피자는 우리나라의 라면과 같은 '서민 음식'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런데 '숨덕질'에 지친 페르디난도 1세가 피자를 궁중에 소개합니다. 일단 한 번 먹어보라는 의도였죠. 그의 마음이 닿아서일까요. 얼마 후 상류층도 피자를 좋아하게 됩니다. 100년 뒤에는 미국에 피자가 퍼집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이탈리아에 주둔하던 미군이 피자에 '미국 감성'을 담아 본토에 전파했죠. 이 '미국식 피자'는 전세계로 퍼져 표준이 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미국식 피자라면 이를 갈게 됐고요. 만일 일본식 김치가 '표준'이 된다면 우리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피자 박스는 왜 네모 모양일까요. 피자 박스는 보통 이미 만들어진 틀을 접어 만듭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소개된 것처럼, 숙련자라면 순식간에 박스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죠. 그런데 이 틀이 원형이라면 어떨까요. 일단 각이 없어서 쉽게 접지 못할 겁니다. 틀을 만들 때도 종이를 잘라내야 해 제작비가 더 들 거고요. 결국 피자나 피자 박스의 형태는 모두 '경제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또 생깁니다. 이런 서민 음식인 피자가 우리나라에서 비싸진 이유는 뭘까요. 미국에서는 라지 피자 한 판이 1만원 안팎인데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피자가 우리나라에 보급된 1990년대 초, 서구권 음식은 흔치 않은 '레어템'이었습니다. 새롭게 소개되는 외국 제품은 비싼 게 당연하죠. 우리나라 음식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외국에 있는 한식집은 라면과 소주, 빈대떡 등을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게 팔고 있죠.
물론 예전보다 피자 가격은 많이 싸졌습니다. 새롭게 소개된 제품이 흔해질수록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니까요. 사람들이 피자를 많이 먹으며 판매량도 늘었고, '규모의 경제'도 완성됩니다. 자연스럽게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프랜차이즈들이 여럿 나타났죠. 기존 브랜드는 이에 대응해 새우·불고기 등 한국식 토핑을 얹은 피자를 많이 출시하면서 고가 정책을 이어갔고요. 이 과정을 통해 피자는 '다양한 가격대'의 음식이 됐습니다. 그때 그때 끌리는 대로 즐기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피자가 둥근 이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근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제조 방식과 유래를 살펴보니 '추리' 정도는 가능했던 것 같네요. 이 기사를 독자 분들께서 읽으실 때면 새해가 이미 밝았을 겁니다. 피자처럼 둥근 해가 떠오른 새해 첫 날도 지나갔을 테고요. 지난 1년 수고하셨습니다. 올해는 작년과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여럿이 모여 피자를 즐길 수 있는 일상이 돌아오길 바랍니다. 호랑이 기운 듬뿍 받는 새해 되세요. 복 많이 받으시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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