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회심의 카드'를 꺼내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다시 수세에 몰렸습니다. '반전'을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초 한앤컴퍼니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안으로 내세웠던 대유위니아 카드도 무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법원은 요지부동입니다. 여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애시당초 승산이 없었던 게임이라는 분석이 많았던 싸움이었습니다. 그만큼 홍 회장은 많은 실책을 했습니다.
사실 홍 회장이 대유위니아를 이번 딜에 끌어들일 때만 해도 새로운 반전이 일어날 듯했습니다. 홍 회장은 대유위니아와 한앤컴퍼니와의 법적 분쟁에서 승소하면 대유위니아로 경영권을 매각키로 약속했습니다. 아직 한앤컴퍼니와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홍 회장이 이런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해 업계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그 믿는 구석이 드러났습니다. 홍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한앤컴퍼니와의 이면합의가 있었고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 홍 회장 측과 한앤컴퍼니를 쌍방대리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이었죠. 홍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판을 뒤집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심의 카드였던 셈입니다.
홍 회장 측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일면 억울해 보이기도 합니다. '백미당'을 분사하고 오너 일가에 대한 예우를 해주기로 '구두'로 약속해놓고 한앤컴퍼니가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골자입니다. 홍 회장 측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김앤장이 한앤컴퍼니와의 매각 협상에 있어 홍 회장과 한앤컴퍼니 모두를 자문한 것도 문제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무용지물'이 된 카드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꺼내든 카드가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간의 분쟁에서 한앤컴퍼니는 절차상으로나 내용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어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면합의가 있었고 한앤컴퍼니가 이에 합의했다면 일정 부분 한앤컴퍼니에게도 타격이 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김앤장의 쌍방대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처음으로 홍 회장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홍 회장에게 법원의 벽은 높았습니다. 재판부는 쟁점 사항에 대해 홍 회장측과 한앤컴퍼니 측에 명확한 답변을 요구했습니다. 재판부는 양측에 △계약 전 양측이 법률 대리인을 대동하고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는지 △홍 회장 측이 김앤장의 쌍방대리에 대해 이의 제기를 했는지 여부 △홍 회장 측이 김앤장의 쌍방대리 문제 지적을 위해 한 구체적인 행위 등에 대해 물었습니다.
재판부의 송곳 질문에 홍 회장 측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홍 회장 측은 남양유업이 법무팀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데다, 홍 회장이 M&A 경험이 없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논리와 증거로 이기려 하기보다는 사정을 참작해달라고 애원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한앤컴퍼니 측은 재판부의 질문에 해석상 오해의 소지가 없는 단어와 답변으로 대응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면합의 의혹에 대한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홍 회장 측이 공개한 문자 메시지만 본다면 그의 주장이 맞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오히려 남양유업 매각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백미당 분사와 오너 일가에 대한 예우의 대가를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홍 회장 측은 '믿었고 속았다'는 입장이지만 그 중요한 사항을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것은 분명 홍 회장의 가장 큰 실책입니다.
'악수(惡手)'의 대가는 컸다
홍 회장은 이면계약과 김앤장 쌍방대리 건으로 자신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일까요. 한앤컴퍼니와의 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 제3자를 이 판에 불러들입니다. 바로 대유위니아입니다. 홍 회장은 '자신이 한앤컴퍼니와의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대유위니아에게 경영권을 넘기기로 약속합니다. 이런 희한한 조건을 전제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길 자신이 있었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조건이 전제된 계약을 대유위니아가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대유위니아도 홍 회장이 한앤컴퍼니와의 분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조건도 아마 홍 회장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들어주기로 했을 겁니다. 대유위니아는 아직 끝나지 않고 분위기상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게임에 베팅을 한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남양유업은 자신들의 핵심 조직에 대유위니아에서 파견된 임직원들을 배치합니다. 남양유업의 조직도 대유위니아 조직구조를 도입합니다. 아직 누가 주인이 될지 모르는 집에 새 주인이 될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들어와 입주청소와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는 격입니다. 남양유업에서는 경영참여가 아닌 자문이라고 강조하지만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없습니다.
홍 회장의 이런 행보는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한앤컴퍼니를 더욱 자극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한앤컴퍼니는 홍 회장이 대유위니아그룹과 체결한 조건부 약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리고 법원이 한앤컴퍼니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재 남양유업에 '파견'됐던 대유위니아 임직원들은 철수한 상태입니다. 홍 회장이 그렸던 큰 그림에 제동이 걸린 겁니다.
사그라질 줄 모르는 욕심
그동안 홍 회장과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 매각을 둘러싸고 총 세 번의 법정 분쟁을 벌여왔습니다. 지난해 8월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소송, 10월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소송, 최근 있었던 홍 회장과 대유홀딩스간의 상호협력 이행협약 금지 가처분 소송입니다.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모두 한앤컴퍼니가 승소했습니다. 홍 회장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겁니다.
여전히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법원 판결에서도 이렇다 할 반전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회심의 일격을 가했지만 논리와 증거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한앤컴퍼니에게 일격을 당했습니다. 판은 점점 홍 회장에게 더욱 불리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한앤컴퍼니로 승기가 기울고 있다는 것을 홍 회장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홍 회장이 입은 가장 큰 타격은 그동안 감춰왔던 그의 욕심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남양유업 외식사업부의 핵심인 백미당은 홍 회장의 부인이 애착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오너 일가에 대한 예우도 자신을 비롯한 가족의 이익은 챙겨달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주식 매매 계약 이후 주가가 올랐으니 매매 가격을 더 올려달라고 주장한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한때 국내 유업계 1위였던 남양유업이 이렇게까지 무너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과도한 욕심 때문일 겁니다. 회사를 지키기보다는 가족을 지키려는 그의 욕심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남양유업의 임직원들과 대리점주들, 그 가족들은 남양유업이라는 이름 아래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달의 시작이 홍 회장에게 있다는 사실을 홍 회장 자신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