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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팔수록 손해…김밥집의 소리 없는 몰락

  • 2026.06.30(화) 16:51

소비자는 "비싸다", 점주는 "남는 게 없다"
원가 폭등·인건비 부담·소비 위축 '삼중고'
가격 올려도 못 버티는 김밥집의 구조적 위기

그래픽=비즈워치

과거에는 주변에서 "김밥 말아 자식 대학 보냈다", "김밥 팔아 빌딩 세웠다"는 성공 신화가 종종 들려오곤 했습니다. 서민들의 가장 든든하고 저렴한 한 끼를 책임지던 김밥집은 대표적인 알짜 자영업으로 통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다 옛말이 됐습니다. 최근 몇 년간 김밥 전문점은 매년 높은 폐업률을 기록하며 소리 없는 몰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때 자영업계의 '불패 신화'로 통했던 김밥 전문점들은 어쩌다 시한폭탄을 안은 업종이 되었을까요.

금(金)값 된 김밥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불과 9년 전인 2017년 서울시의 평균 김밥 가격은 2144원, 부산은 1845원이었습니다. 동네 어귀마다 있었던 가성비 김밥집에서는 단돈 1000~1500원이면 기본 김밥 한 줄을 살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푸짐하진 않지만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김밥 한 줄로 가볍게 끼니를 챙길 수 있었죠.

그러나 2026년 현재 서울시의 평균 김밥 가격은 38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통계상 수치보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훨씬 더 매서운데요. 이제 동네 김밥집에서도 야채김밥 한 줄이 4000원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고객들이 즐겨 찾는 참치김밥이나 치즈김밥 같은 인기 메뉴는 한 줄에 5000~6000원을 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습니다.

사진=독자 제공

물론 과거의 김밥과 비교하면 가격 상승과 동시에 최근 품질 자체가 상향 평준화된 건 사실입니다. 속재료를 가득 채운 프리미엄 김밥이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양과 영양 면에서는 훨씬 풍성해졌죠. 하지만 식사 대용으로 만만하게 집어 들던 김밥이 이제는 웬만한 찌개나 국밥 한 그릇 가격에 육박하면서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선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분식집에서 라면에 김밥 한 줄을 먹어도 5000원권 한 장이면 해결됐던 시절은 이제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대중문화 속 아스라한 추억 이야기가 되어버린 셈인데요. 결국 참치김밥 한 줄 가격이 5000원을 넘어서자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차라리 가성비가 좋은 편의점 도시락이나 패스트푸드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남는 게 없다"

소비자들은 "김밥이 왜 이렇게 비싸졌냐"고 아우성이지만, 정작 김밥집 사장님들은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김밥은 외식 메뉴 중에서도 손이 가장 많이 가는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김밥 한 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이 재료들을 하나하나 따로 조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근을 채 썰고, 우엉을 조리고, 계란 지단을 굽고, 시금치를 더쳐 양념하는 등 사전 재료 준비에만 매일 몇 시간의 막대한 노동력이 투입됩니다. 게다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김밥을 말고 썰어내야 합니다.

이 와중에 최저임금은 가파르게 오르니 주방에 사람 한 명을 쓰면 그 인건비를 건지기 위해 점주는 쉴 새 없이 더 많은 김밥을 말아내야 하는 실정입니다. 오죽하면 "창업 후 온종일 김밥만 쌌는데 남는 것 없이 빚만 생겼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죠. 결국 사장님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골병이 들며 일하다 한계에 부딪혀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김밥 전문점에서 김밥을 썰고 있는 모습/사진=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여기에 최근 1~2년간 발생한 원자재 인플레이션과 기후 변화는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전 세계적인 K푸드 열풍으로 김 수출이 급증한 데다, 기후 변화로 채취량까지 줄어들면서 '김 가격 폭등'이라는 전대미문의 쇼크가 찾아왔습니다. 2024년 초까지만 해도 장당 100원 수준이었던 김은 불과 2년 만에 50% 이상 폭등했습니다.

당근과 오이 등 필수 채소 역시 여름철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가 발생할 때마다 가격이 치솟으며 상시적인 불안정을 겪고 있는데요. 단무지 같은 가공식품 역시 제조 공장의 인건비와 물류비 상승이 고스란히 제품 가격에 반영돼 꾸준히 올랐습니다.

참기름, 참치, 계란 등 필수 식재료 가격도 매달 최고가를 경신하는 추세입니다. 결국 제품 가격 인상 속도가 원자재 가격 상승 폭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팔면 팔수록 적자가 심화되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부터 골목상권까지 '위기'

이러한 위기는 골목길 개인 점포뿐만 아니라 김밥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실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가격 인상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기는커녕 가맹점 기피와 소비자 이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국내 프리미엄 김밥의 선두 주자이자 한때 가맹점 수 업계 1위를 자랑했던 '고봉민김밥人' 운영사 케이비엠의 실적이 대표적입니다. 케이비엠의 매출은 2022년 365억 원에서 2025년 271억 원으로 급감했습니다. 급격한 원가 상승을 버티지 못해 영업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적 악화는 가맹점 이탈로 이어져 2022년 541개에 달했던 매장 수 역시 2년 만에 100개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강자 '김가네'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매장 수가 448개에서 378개로 감소하면서 외형 둔화가 본격화됐는데요. 매출 규모도 2022년 395억원에서 2025년 367억원으로 감소했습니다. 또 다른 대표 프리미엄 브랜드인 '바르다김선생'은 더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매출이 2023년 208억원에서 2025년 141억원으로 눈에 띄게 줄었고,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장 수도 125개에서 94개로 줄었습니다.

대형 브랜드조차 외형 축소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과거 2000년대 골목상권을 장악했던 '김밥천국'의 사정은 더욱 처참합니다. 태생적으로 상표권 등록이 불가능해 누구나 간판을 걸 수 있었던 김밥천국은 위기 상황에서 가맹점을 통제하고 브랜드를 관리해 줄 강력한 '단일 본사'가 없었습니다. 결국 원자재 쇼크와 인건비 폭탄이 터지자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최소한의 보호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각자도생하던 전국의 김밥천국 매장들이 가장 먼저 폐업의 직격탄을 맞게 됐습니다.

CJ제일제당 김밥 자동 생산라인/사진=CJ제일제당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현재 간신히 버티고 있는 매장들은 주방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지워내는 '자동화 시스템'을 대안으로 택하고 있습니다. 주문을 받는 키오스크는 기본이고 김밥용 밥을 일정하게 펴주는 '라이스 시터'와 자동으로 김밥을 썰어주는 '김밥 절단기'를 도입해 인건비를 극단적으로 줄인 기업형 매장들만이 생존 게임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기계화 시설을 도입할 자금력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자동화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기계를 들일 돈이 없는 이들은 결국 한계에 부딪혀 폐업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민들이 단돈 몇천원으로 따뜻하고 배부르게 정을 나눌 수 있었던 동네 김밥집의 몰락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알던 정겨운 '국민 간식' 김밥은 이제 차가운 기계가 말아내는 대형 매장이나 편의점 가공식품 코너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씁쓸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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