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취를 시작하면서 '당근맨'이 됐습니다. 가구부터 홈트레이닝 기구까지 값싸게 구매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동네 주민이라고 돈을 깎아주는 '이웃의 정'도 느껴봤죠. 그 이후부터 계속 당근마켓에 접속하고 있습니다. 동네 맛집을 찾을 때도 유용했습니다. 최근에는 취미 생활과 동네 모임에도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당근마켓은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동네에 어떤 물건이 올라왔는지 살피는 맛(?)에 한참 동안 앱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상품 가격과 소개 글도 살펴보고 관심이 가면 하트도 눌러봅니다. 어떤 상품이 '끌올'(끌어올림)로 올라왔는지, 가격 조정은 됐는지 등을 살피다보면 하루가 금세 갑니다. 지금도 당근마켓에 접속했다가 빨래 건조대와 선풍기 등 상품에 하트를 누르는 절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당근마켓에는 매력이 있습니다. 멤버십 등 유인 요인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당근마켓은 자신들을 '중고거래'가 아닌 '지역생활 커뮤니티'로 소개합니다. 커뮤니티는 플랫폼과 달리 이용자 스스로 생태계를 형성합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요. 최근 당근마켓의 기세는 무섭습니다. 지난 5월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3000만명을 넘었습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만 1800만명에 달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당근을 써본 겁니다.
현재 쿠팡, 네이버 등 이커머스 플랫폼은 충성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고정 방문객을 늘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멤버십 등 '록인(Lock-in)' 수단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당근마켓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특별한 혜택이 없어도 플랫폼 충성도가 높습니다. 특히 고물가에 불황이 깊어질수록 중고 거래에 대한 수요는 더 많아집니다. 당근마켓에게는 호재입니다.
당근마켓의 가능성은 몸값으로도 증명됩니다. 현재 당근미켓의 기업가치는 3조원(시장 추정가)입니다. 롯데쇼핑(시가총액 2조7299억원), 이마트(3조1639억원) 같은 '유통 공룡'들의 시가총액과 비슷합니다. 물론 플랫폼 기업 특성상 고평가 논란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근마켓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근마켓의 연간 거래액은 지난 2020년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당근마켓이 기존 플랫폼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배달의민족이 대표적입니다. 당근마켓은 지난해 '비즈프로필' 서비스를 열었습니다. 중소상공인들은 이를 통해 배달앱의 가게 페이지와 유사한 형태의 스토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상품 주문과 결제도 가능합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배달비 인상으로 배달의 민족 대신 비즈프로필을 이용한 음식 포장 수요가 늘었습니다. 현재 비즈프로필 누적 이용자 수는 1800만명에 이릅니다. 배달의민족에게 당근마켓의 성장은 마뜩잖은 일입니다.
당근마켓은 '하이퍼로컬' 시장의 선두주자입니다. 하이퍼로컬은 동네 상권과 생태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합니다. 당근마켓은 이를 토대로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몰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은 꾸준한 유입 트래픽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도 과거 포털의 힘을 이용해 쇼핑과 웹툰, 부동산 등으로 끊임없이 서비스를 확장했습니다. 당근마켓도 같은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당근마켓은 사업모델이 단순합니다. 쿠팡, 마켓컬리만 봐도 상품을 소비자와 연결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합니다. 반면 당근마켓은 컨슈머(consumer)가 셀러(seller)로 전환되는 과정이 매우 간단합니다. 대규모의 물류센터를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라이더·택배기사도 필요없습니다. 노동 이슈와 출혈 경쟁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커머스 모델입니다. '중개'라는 플랫폼의 본질에만 충실하니까요.
물론 긍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모델이 단순한만큼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거대 플랫폼의 위협도 받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지난해 네이버 카페 서비스에 '이웃톡' 서비스를 추가했습니다.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이웃 인증'을 완료하면 게시글을 작성하고 다른 이웃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당근마켓을 정조준 한 겁니다. 롯데쇼핑과 신세계도 각각 중고나라, 번개장터에 투자하며 시장에 뛰어들 채비가 한창입니다.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다는 것도 약점입니다. 당근마켓의 지난해 매출액은 257억원이었습니다. 조(兆) 단위 몸값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수년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력 사업인 중고거래에서는 수수료가 없어 매출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부가 서비스인 '동네 생활', '내 근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당근마켓이 수익을 내는 사업은 '지역 광고'가 유일합니다. 이는 개인·업체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만들어 노출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앞으로의 숙제는 수익성에 대한 증명입니다. 당근마켓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간편결제 서비스 '당근페이'를 꺼내 들었던 것도 이때문입니다. 거래 수수료를 기반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근마켓의 거래 대부분은 직거래입니다. 결제 대부분이 현금과 계좌이체로 이뤄집니다. 사용자들이 거래에서 당근페이를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당근마켓은 수익성을 이끌어줄 다른 '캐시카우'를 찾아야 합니다.
당근마켓이 독보적 형태를 가진 플랫폼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적자임에도 당근마켓의 경쟁력에 눈이 가는 이유입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거대 플랫폼들의 견제를 이겨내면서 탄탄한 수익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과거 카카오톡은 무료채팅에서 출발해 카카오커머스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주력 수익 모델을 찾은 겁니다. 당근마켓도 카카오가 걸은 성공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