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매만지며~' 흥겨운 '뽕짝' 멜로디가 시장 골목에 울려 퍼진다. 국수 골목에선 모락모락 새하얀 김이 올라온다. 고소한 전 냄새도 함께다. 축축한 골목을 더 들어가면 스타벅스 녹색 '사이렌' 간판이 고개를 내민다. 녹이 슨 상가와 묘한 '힙'함을 이룬다. 장막을 들추듯 컴컴한 상가 계단을 올랐다. 매장에 들어서니 밖과 다른 신세계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극장형' 카페가 나타났다.
경동시장 한복판에 커피 프랜차이즈의 대명사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스타벅스 경동 1960' 점이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전통시장 내에 매장을 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타벅스는 앞서 이를 위해 동반성장위원회, 경동시장상인회, 케이디마켓주식회사의 4자 간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스타벅스는 경동 1960점을 MZ세대의 '핫플'로 만들고, 시장과의 상생도 이뤄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극장 감성 담았다
눈이 내리던 지난 1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을 찾았다. 스타벅스는 1960년대 지어졌던 폐극장 '경동극장'을 카페로 리모델링했다. 총 2년여의 공사 기간이 소요됐다. 기존의 극장 감성을 그대로 카페에 녹여낸 것이 특징이다. 일례로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닉네임이나 번호가 카페 외벽에 영화 크레딧처럼 비춰진다. 추억 속 영사기의 느낌이 제법 괜찮았다.
좌석도 과거 극장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극장 스크린이 있던 무대서부터 계단식으로 올라간다. 과거 영화가 출력되던 영사실은 직원들의 휴게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카페 맨 뒤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흡사 공연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매니저들이 마치 무대에 올라 커피를 만드는 것처럼 연출한 것"이라며 “손님들은 이를 공연처럼 관람할 수 있는 셈"이라고 했다.
천장의 목조 구조물도 백미다. 철제 대신 기존의 목조 설계를 유지했다. 여기에 극장 조명을 사용해 안락함을 극대화했다. 덕분에 웅장하면서도 아지트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매장은 전체 363.5평 규모, 200여석의 좌석으로 구성됐다. 주문받는 테이블도 눈에 띈다. 스타벅스의 재고 텀블러를 파쇄해 만들었다. 재활용 알록달록한 파편들이 박혀있어 독특한 색감을 연출한다.
매장 내에는 공연 공간도 있다. 경동 1960점은 이곳에서 지역 아티스트들의 문화예술 공연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지역 아티스트들이 일 2회씩 클래식·재즈 등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라며 "경동시장이 있는 제기동은 문화 예술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춰 경동 1960점은 물론 시장 방문객도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상인들의 반응은
경동 1960점은 스타벅스의 '5번째' 커뮤니티 스토어다. 이는 스타벅스가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와 장기적 발전을 위해 매장 매출 일부를 비영리 단체에 기부하는 사회 공헌 사업이다. 경동 1960점은 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품목당 300원씩을 적립해 경동시장 지역 상생 기금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 기금으로 지역 인프라를 개선하고 상생 프로그램을 발굴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상인들의 반응도 우호적이다. 인근에서 수산물 상회를 운영 중인 김성자 (가명·57세) 씨는 "재래시장도 앞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스타벅스라는 대기업과 길을 모색해 나간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방법들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딸들에게도 (경동 1960점에) 꼭 한번 가보라고 이야기를 해줬다"며 "시장에 '스타벅스 생겼냐'며 신기해하더라"고 웃어 보였다.
특히 젊은 층의 재래 시장 유입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경동 시장에서 30년간 건어물 장사를 이어왔다는 김숙희(가명·62세)씨는 "근래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렸던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모처럼 시장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이어 "스타벅스 카페도 들렸다가 경동시장의 질 좋고 싼 상품들도 한 번씩 구매해보고 가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경동 1960점의 '노림수'
스타벅스의 경동 1960점 출점은 영리하다. 무엇보다 스타벅스의 '상생'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현재 스타벅스 코리아는 상표 및 기술사용 대가로 미국 본사에 적잖은 금액을 로열티로 내고 있다. 매년 원두 매입에 따른 금액도 지불한다. 한국에서 돈만 벌어간다는 이미지를 줘선 곤란하다. 여기에 마뜩잖은 시선도 분명 있다. '커뮤니티형 매장'은 이런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는 방책이다.
매장으로서의 경쟁력도 충분하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는 1980~90년대 흔적을 품고 있던 지역이 핫하다. 이른바 '레트로' 감성이다. 성수동, 문래동이 대표적이다. 각각 수제화거리, 인쇄골목으로 과거 붐볐던 도시다.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경동시장도 레트로한 매력을 갖춘 곳이다. 이를 잘 살리면 경동 1960점도 충분히 SNS '핫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관건은 경동 1960점이 경동시장과 잘 녹아들 수 있느냐다. 미묘한 '이질감'이 경동 1960점의 최대 강점이자 단점이다. 경동시장의 주 소비층은 50~70대의 고령층이다. 이들은 아직 스타벅스가 낯설다. 이들을 위한 서비스적 노력도 필요하다. 시장의 사랑방 역할도 잘 해내야 한다는 얘기다. MZ세대에게만 타겟팅 한다면 '롱런'이 힘들 수 있다는 예기다. 물론 잘만 안착한다면 상생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힐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경동 1960에 담긴 스타벅스의 '노림수'다.
스타벅스 손정현 대표이사는 "오래된 공간을 특별한 트렌드를 가진 공간으로 변화시켜 우리의 전통시장이 활성화되길 희망한다"며 "'경동1960점'에서 지역사회와의 상생과 함께 모든 세대가 가치 있게 즐길 수 있는 스타벅스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