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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간 김범석, '환노위' 간 쿠팡

  • 2025.01.25(토) 13:00

[주간유통]환노위, 쿠팡 과로사 관련 질의
강한승 쿠팡 대표·홍용준 CLS 대표 참석
김범석 의장, 트럼프 취임식 이유로 불참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미국에 간 한 남자

지난 21일. 미국 시간으로는 20일의 일입니다. 미국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제 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당초 25만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됐던 취임식은 강추위 때문에 2만여 명만 초대되는 실내 행사로 변경됐습니다.

이 때문에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트럼프의 초대를 받았다며 미국으로 향한 수많은 기업인·정치인들이 대부분 실제로는 취임식 행사에 초대받지 못해 호텔 등에서 취임식을 본 것으로 알려진 겁니다. 당연히 그 와중에 실제로 초대를 받아 행사장에 얼굴을 비춘 인물들이 더 부각됐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등이 그렇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김범석(왼쪽) 쿠팡Inc 의장과 알렉산더 왕 스케일AI CEO, 샘 알트만 오픈AI CEO/사진=알렉산더 왕 트위터

특히 김범석 의장은 이날 단 1800여 명만 초대된 의회의사당 취임식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 알렉산더 왕 스케일AI 대표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친분을 드러내기조 했죠. 취임식 전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지명자,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 지명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 등과도 만났습니다. 

김 의장이 미국 정부의 주요 수뇌부와 만나고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된 건 그만큼 미국에서도 쿠팡을 눈여겨보는 기업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쿠팡의 사업이 국내에 집중돼있는 탓에 내수 기업처럼 보이지만 사실 쿠팡은 뉴욕 증시에 상장한 시가총액 400억달러짜리 기업입니다. 

다른 관계도 있습니다. 쿠팡 Inc.의 공공관계총괄을 지낸 알렉스 웡은 이번에 백악관 수석 국가안보부보좌관에 지명됐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케빈 워시는 쿠팡의 사외이사입니다. 김 의장이 한국과 미국의 협력에 한 몫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의도에 간 또 다른 남자

김 의장이 무도회를 즐긴 지 몇 시간 후,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엔 강한승 쿠팡 대표와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표,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 등 쿠팡의 경영진들이 총출동했습니다. 

청문회의 이름은 '쿠팡 택배 노동자 심야노동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청문회'였습니다. 쿠팡의 택배 노동자와 배송 기사의 근로 조건과 문제점을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난해 5월 쿠팡 배송기사였던 고(故) 정슬기 씨가 사망하면서 국회가 주요 관계자들을 부른 겁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 자리에서 강한승 대표는 최근 5년간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 수, 작년에 숨진 노동자 수 등을 묻는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며 진땀을 뺐습니다. 강 대표는 이날 2023년 이슈가 됐던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한 질문도 받았습니다. 1년 전 '안전을 위한 선의의 인사평가였다'라던 쿠팡이 이날은 "유감스럽다", "죄송하다"는 답으로 바뀌었죠. 

사실 이 자리에 있어야 했던 건 김범석 의장이었습니다. 환노위는 김 의장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김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이유로 불참했습니다.

이에 대해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며 "다음엔 반드시 김 의장이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도 "이해가 안 된다"면서 "트럼프 취임식은 가고 청문회는 안 오냐"며 비판했습니다. 최근 계엄 사태 이후 사이가 멀어지고 있는 여야지만 이번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며 김 의장을 질타했습니다.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사실 김 의장이 국회의 부름에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나오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5년엔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농구를 하다가 다쳐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았다"며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술 때문에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복장을 단정히 해야 하는 국감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2020년 환노위의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죠. 

사실 국회가 연 청문회에 증인 출석을 요구받은 기업인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환노위 측이 김 의장을 부른 건 청문회 시작 2주 전인 지난 9일입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기업인에겐 스케줄을 조율하기 빠듯할 수 있죠. 그것도 하필 그 스케줄이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같은 빅 이벤트일 경우엔 더 그렇습니다.

쿠팡 물류센터 전경/사진제공=쿠팡

하지만 이번 청문회의 주제는 다름아닌 쿠팡의 노동자가 근무 중 사망한 사고에 대한 건이었습니다.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쿠팡의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김 의장으로서는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사안입니다. 김 의장이 미국에 있다는 것도 핑계가 되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매출 대부분을 한국에서 올리면서 본인은 미국에만 있다는 비판을 받기 좋습니다.

쿠팡은 늘 '한국 기업'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일본인인 손정의 회장의 투자를 받았을 때도, 미국에 상장했을 때도 김 의장은 늘 '쿠팡은 한국 기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국회가 김 의장을 찾으면 그는 '농구를 하다 다쳐서 국정감사에 나오지 못하는, 미국에 사는 미국인'이 돼 버립니다. 

기업인이라면 언제든 정치인들이 부르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가대표' 기업이라면, 온 국민이 쿠팡 없이는 살 수 없게 하겠다던 기업인이라면 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죽은 청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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