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종규 회장의 후계 풀 다양화 시도
KB 사태 직후 취임한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은행장에게 지배구조 이슈는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숙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연말 윤 회장의 두 번째 정기인사에서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은 곳곳에서 엿보였다.
당시 인사를 통해 국민은행의 이홍 영업그룹 부행장(58년생)은 경영기획그룹으로 이동했고, 허인 경영기획그룹 전무(61년생)가 승진하면서 그 자리를 채웠다. 핵심 그룹 두 곳의 임원을 각각 선임 1년 만에 교차 발령낸 것. 요즘의 은행권 인사 트렌드를 고려하면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전략이다.
오래전 윤종규 회장 본인도 고 김정태 국민은행장 시절 그런 형태로 후계수업을 받았다. 당시 윤 회장은 전공분야였던 재무전략본부 부행장에서 개인금융그룹으로, 신기섭 부행장은 자본시장 담당에서 재무·전략·HR그룹으로, 김영일 부행장은 개인금융담당에서 전산정보그룹으로 교차발령을 받았다. 세 명의 부행장 간 후계경쟁을 유도한 것이다.
윤 회장 역시 차기 구도를 염두에 두고 검증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옥찬 사장(56년생)이 내주 초 지주 사장으로 공식 취임하는 것을 비롯해 윤웅원 전 KB금융 부사장(60년생)을 국민카드 사장으로 불러들였다. 양종희 지주 부사장(61년생)도 1년 만에 KB손보 사장으로 내정했다. 모두 그룹 내에선 중량감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김옥찬 사장 내정자는 윤 회장과 함께 회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다양한 후계 풀을 구성한 셈이다.
◇ 외부 입김에 불안감은 여전
윤 회장의 이런 노력에도 KB금융 안팎에서 불안감이 나오는 것은 여전히 '외압'이라는 부담 때문이다. 과거 회장·행장 선임에서도 그랬고, 윤 회장이 지난 1년간 공석인 은행 상근감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 은행 감사직이란 게 낙하산 인사가 대부분이지만, 문제는 회사가 원하는 낙하산이냐 아니냐에 있다. 실제 신한은행은 한때 감사 자리를 비워 놓은 1년 9개월간 감사원 등 애초 원하지 않았던 곳으로부터의 압박으로 마음고생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궁극적으로 회장과 행장 분리가 바람직하다고 해도 이를 금융당국 등 정부에서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압박을 하는 것도 저의(?)를 의심케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근 윤 회장이 범 금융 신년인사회에 모습을 나타내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리며 행장·감사 선임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아직은 묵묵부답이다.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데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 회장 임기·정권 교체 맞물린 내년엔 회오리
윤 회장의 임기는 내년 11월 말이다. 아직은 2년의 여유가 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여유 있게만 보낼 수는 없다. 공교롭게 내년 대선과도 맞물려 있다. 정권 막바지에 회장을 뽑아야 하는 KB금융에 어떤 식으로 파편이 튈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 KB금융에 자리를 원했던 한 여권 인사가 청와대 핵심으로 이동하면서 KB금융은 바짝 긴장하기도 했었다.
KB 한 관계자는 "아직 임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정치 일정과 맞물려 있어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윤 회장의 취임과 함께 물갈이가 이뤄진 KB금융 이사회의 성향도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의 활동만으론 외부의 비바람으로부터 KB금융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가늠하기 어렵단 얘기다.
역대 KB금융 회장(황영기·어윤대·임영록) 중 연임을 한 사례는 없었다. 오히려 불명예로 떠나야 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KB금융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면, 경영성과에 따라 연임의 길을 터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안된다면 현실적으로 투트랙 전략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조심스레 나온다. '포스트 윤종규' 체제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