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겠다는 금융당국의 대책이 나왔다. 신용카드사가 데이터 관련 사업, 사업자 대상(B2B) 렌털사업 등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태스크포스의 결과물을 받아 본 카드사들은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업계가 절실하게 요구해 온 레버리지 배율 규제 완화와 부가서비스 축소 허용 등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 빅데이터·중금리대출 자산 레버리지 산정 제외
금융위원회는 9일 '카드산업 경쟁력 제고 및 고비용 영업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지난해 발표된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의 후속조치다.
카드수수료 체계 개편에 따라 우대가맹점 범위가 넓어지면서 카드사의 신용판매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는데 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태스크포스의 목적이었다.
금융위는 우선 카드산업의 경쟁력 강화 조치의 일환으로 신용카드사가 데이터 관련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지원하기로 했다.
본인신용정보관리업(마이데이터사업)과 개인사업자 신용평가업을 카드사 겸영업무로 규정하고, 빅데이터 분석·제공·자문서비스를 부수업무로 명시했다.
또 카드사의 빅데이터 신사업 관련 자산과 중금리 대출 자산은 레버리지 비율(총자산/자기자본) 산정시 총자산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현재 카드사는 자산이 자기자본의 6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레버리지 배율 규제가 적용 중이다. 이 배율은 그대로 두지만 예외항목을 준다는 얘기다.
또 카드사가 사업자 대상(B2B) 렌털사업에 보다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리스자산 잔액범위 내에서 대상 물건의 제한을 없애기로 했다.
B2B 렌털시장은 자본력·영업력 등 진입장벽이 높아 AJ네트웍스와 롯데렌탈, 한국렌탈 등 소수 종합렌털사가 과점하는 구조라서 카드사가 진출하더라도 소형 렌털업체의 시장을 잠식할 우려는 없다고 금융위는 판단하고 있다.
또 카드산업의 고비용 영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로 대형가맹점에 리베이트 형식으로 제공되는 판촉비용과 법인회원에게 제공되는 캐시백 등 각종 경제적 이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는 현재 카드사들이 가맹점 수수료의 절반 이상을 마케팅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그 밖에도 무실적 카드의 유효기한 만료 시 갱신이나 대체발급을 위한 고객 동의채널을 현행 서면 외에 전화와 인터넷, 모바일 등으로 확대했다. 갱신과 발급, 이용한도 조정, 약관 변경, 수수료율 변경 등 각 고지사항마다 모두 다르던 고지방법을 간소화하고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보내는 것도 허용했다.
◇ 카드사 "실효성 없어…수수료 인하 손실 회복 불가"
금융당국이 이처럼 카드산업을 위해 여러가지 개선안을 내놓았다지만 정작 내용을 접한 카드사들의 반응은 미지근한다.
카드업계는 이번 대책에 대해 카드산업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방안이라기보다는 정책적인 필요에 따라 카드업계를 좌지우지 하려는 속내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우선 일부 카드사 입장에서 규제개선이 시급했던 레버리지 배율 규제 완화가 불발됐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업계 카드사 7곳의 레버리지 배율 평균은 5.1배다. 카드사별로는 우리카드 6.0, 롯데카드 5.8, KB국민카드 5.2, 하나카드 5.1, 현대카드 5.0, 신한카드 4.9, 삼성카드 3.7 등이다.
우리카드와 롯데카드는 더이상 영업용 자산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며, KB국민카드와 하나카드 등도 한도도달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위는 빅데이터 관련 자산과 중금리대출 자산에 대해서는 레버리지배율 산정에서 제외시켜준다는 입장이지만 애당초 관련 자산의 규모가 너무 작아 실효성이 크지 않다.
실제로 우리카드의 경우 금융위의 시뮬레이션 결과 이번 대책이 적용되면 레버리지 배율이 6.0배에서 5.9배로 낮아지는 데 그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중금리대출의 경우 당국 기준대로 하려면 연 11%대까지 금리를 내려야한다"며 "현 15%가 넘는 대출이 대부분인 카드사 입장에서 레버리지배율 낮추겠다고 당국기준의 중금리대출을 확대하다가는 수익성 악화는 물론 부실자산만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빅데이터 사업은 이제 초기단계며 애당초 자산이 많이 필요한 사업도 아니다"며 "당국의 발표를 검토해봤지만 '잘됐다' 싶은 항목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B2B렌털사업 진출 지원과 고비용 마케팅 관행 개선책 등도 실효성이 없다는 게 카드업계의 한목소리다.
B2B렌탈 시장은 카드사 입장에서 경험도 없고 성공도 보장되지 않은 사업이다. 이미 견고하게 시장이 분할된 B2B렌털시장에 카드업계가 진출하기도 어렵고 진출할 명분도 없다.
고비용 마케팅 관행 개선은 일반 고객에 대한 각종 부가서비스 축소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당국은 마케팅 관행 개선에 대해 일반 고객대상이 아니라 일부 대형가맹점과 법인회원에 대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한 카드사 관계자는 "대형가맹점과 법인회원에게 제공되는 카드사의 리베이트가 결국 해당 가맹점과 법인을 통해 고객에게 부가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며 "당국이 순진한 척을 하는 건지 정말로 시장의 상황을 모르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브랜드사(VISA, UPI)의 수수료 인상에 대한 카드사의 공정위 제소 결과 국제브랜드사가 무혐의를 받은 것에 대해 당국이 이제 수수료 인상분을 고객에게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방안도 허술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동안 해외 카드사용액에 비례해서 부과되는 국제브랜드수수료는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해당 카드사용자가 부담해야 하지만, 수수료 인상에 대한 공정위 심사기간 중 한시적으로 인상분을 카드사가 부담했다.
이제 당국이 국제브랜드 수수료와 관련한 회사별 약관변경 신청시 고객부담을 허용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신규발급분에 대해서만 허용할 예정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 깔려있는 해외브랜드 카드만 수십만장으로, 가지고 있을 사람은 다 가지고 있다"며 "신규발급에 대해서만 약관변경을 허용해 준다는 것은 결국 계속해서 카드사가 부담을 가지고 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지방법 간소화 등의 대책은 기술발달에 따라 당연히 적용해야 할 부분이지 대단하고 새로운 규제완화라고 보기 힘들다"며 "당초 예정보다 수개월간 방안발표를 미루더니 결국 카드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을 메꿀 방안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