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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세탁방지 시스템 비상]上 은행에서 가상화폐까지

  • 2019.10.23(수) 12:29

미국 제재 강화로 세계 금융권 긴장
국제기구, 올해 한국 금융 평가
가상화폐도 대상.."가상화폐거래소 대비 시급"

2014년 미국 정부는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에 89억7000만달러(약 9조2032억원) 벌금을 물렸다. 이 은행이 금융제재 대상국가인 이란, 수단, 쿠바 등과 금융거래를 하면서다. 역대 미국 경제제재 위반 벌금 중 최고액을 받은 BNP파리바는 6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분기 순손실을 냈고 BNP 파리바 그룹 회장은 사퇴했다.

세계적으로 금융회사의 자금세탁방지 의무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은행들에 '수상한 거래'를 신고할 의무를 부여하면서다. 세계 금융 중심지에서 자금세탁방지 규제가 강화되자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퍼졌다. 미국에 진출한 BNP파리바, 도쿄 미쓰비시 UFJ은행, 중국은행, 대만 메가뱅크 등이 벌금을 받았다.

한국의 은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7년 농협은행 뉴욕지점은 자금세탁방지 내부통제 기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벌금 1100만 달러(약 118억원)을 부과 받았다. 그 이듬해 농협은행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기관주의'를 받았다. 작년 남북 정상의 평양선언 직후엔 미국 재무부가 산업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에게 '대북제재를 준수해라'는 요청을 보내기도 했다.

'2017년 농협은행 벌금' 사건은 국내 금융회사에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금융사의 글로벌 진출이 '허술한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탓에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금융회사들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내에 자금세탁방지 규제가 도입된 것은 2001년이다. '특정 금융정보거래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특금법)이 제정됐고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출범했다. 2009년에는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자금세탁 사건은 이어졌고 금융사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2조원의 돈을 챙겨 중국으로 도주한 '조희팔 사기 사건', 임직원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조성한 'CJ 비자금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은 'CJ 비자금 사건' 관련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보고하지 않아 약 2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 받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자금세탁방지에 대한 관심이 어느 해보다 높은 상황이다.

올 1월부터 내년 2월까지 FATF는 한국에 대해 자금세탁방지와 테러자금조달금지 운영에 관한 상호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FATF는 지난 8월 실사를 끝내고 현재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이번 평가 결과가 한국 금융 투명성의 척도가 되는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FATF 평가에 대비해 지난 7월에는 특정금융거래보고법이 개정됐다. 전자금융업자와 대부업자(자산 500억원 이상)도 자금세탁방지의무 대상에 포함됐고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의무도 강화됐다. 고액현금거래보고 기준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아졌다.

'보고'는 자금세탁방지의 핵심이다. 금융회사는 1000만원 이상 현금거래(계좌 이체 등 제외)나 자금세탁 혐의가 있는 의심거래는 FIU에 보고해야 한다. 의심거래보고는 금액과 상관없이 보고 대상이다. 이달 우리은행이 금감원으로부터 기관경고를 받은 이유도 보고 의무를 위반 탓이다.

김미영 금감원 자금세탁방지실장은 "2017년 농협은행 제재가 국내 금융회사가 자금세탁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며 "그 이전까지 해외 지점이나 사무소 차원에서 자금세탁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한국 본사에서 직접 해외 자금세탁방지 업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금융사는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안에 이미 들어온 상황"이라며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자금융업자나 대부업자는 현황파악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최근 자금세탁방지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가상통화다.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FATF에선 '가상화폐'를 '가상자산'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각국의 권고기준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페이스북이 개발중인 암호화폐 리브라(Libra) 등도 FATF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

FATF 권고에 따라 내년부터 세계 각국은 가상통화취급업소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하도록 법을 제정해야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지열 한국자금세탁방지 전문가협회장은 "FATF가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에 대한 구속력 있는 권고안을 제시했다"며 "내년 6월까지 각 국가는 관련 법을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가상화폐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주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글로벌 영업을 하는 국내 4대 가상화폐거래소도 내년 글로벌 규제에 앞서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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