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손보협회가 무해지환급금 보험의 보험료적립금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해 줄 것을 금융당국에 요청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따른 해외 대체투자 손실 증가로 손보사들의 지급여력비율(RBC)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재무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손보협회는 외부 전문가 자문을 받아 무해지환급금 보험의 보험료적립금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해 줄 것을 금융위원회에 건의했다.
보험업법령의 문언 해석상으로는 무해지환급금 보험의 보험료적립금을 전부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나, 과거 규정개정 취지, 해약공제액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하는 RBC 체계를 고려해 일정부분이라도 감독당국의 정책적 인정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손보협회는 무해지환급금 보험의 보험료적립금이 국제보험감독기준(ICPs)에 의거해 가용자본 평가 시 고려요소인 가용성, 영구성, 후순위성 요건을 대체로 충족한다는 입장이다. 영구성 측면에서 기본자본이 아닌 보완자본으로 볼 수 있으나 감독당국의 재량권을 통해 기본자본 혹은 보완자본으로의 반영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의 일부를 향후 보험금 지급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적립금을 쌓아둬야 한다. 다만 보험계약을 중도에 해약할 경우 지급할 해약환급금이 발생하는데, 이 시점에서 발생하는 보험료적립금과 해약환급금 간 차이 만큼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해지환급금 보험은 상품명 대로 보험료 납입기간 중에 해약할 경우 해약환급금이 없게 설계됐다. 중도 해약된 건의 환급금이 없는 만큼 해약환급금의 재원인 보험료적립금을 RBC 가용자본으로 볼 수도 있으나, 현행 규정상 해약공제액까지만 가용자본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손보협회는 설명했다.
무해지환급금 보험의 보험료적립금이 가용자본으로 인정받으면 그만큼 보험사들의 RBC가 더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RBC는 가용자본(지급여력금액)을 요구자본(지급여력기준금액)으로 나눈 수치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바로 지급할 수 있는 자산 상태를 나타낸 지표로 보험업법에서는 이 비율이 100%를 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권고기준은 150%다.
◇ 손보사 RBC '빨간불'…지난해 말 20개사 무더기 하락
보험업계는 손보협회의 요청이 손보사 RBC와 관련이 깊다고 본다. 지난해말 기준 전체 29개 손보사 중 20개 손보사의 RBC가 전분기 대비 하락했으며, 업계 평균 RBC도 247.7%에서 234.2%로 13.5%포인트나 빠졌다. RBC 하락은 생보업계도 다르지 않지만 전체 24개사 중 17개사가 하락하는 데 그쳤고, 업계 평균 RBC도 303.4%에서 297.3%로 6.1%포인트 낮아져 손보업계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RBC 악화는 대형사도 예외가 없었다. 지난해 말 업계 1위사인 삼성화재의 RBC는 전분기 대비 18.4%포인트 떨어진 300.9%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해상(220.4%→190.1%), DB손해보험(218.9%→207.5%), KB손해보험(188.6%→175.8%) 등 주요 손보사의 RBC도 일제히 하락했다.
중소형사들은 RBC 관리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롯데손해보험은 RBC비율이 162.3%, 흥국화재는 161.7%로 전분기 대비 각각 7.1%포인트, 15.7%포인트 하락했으며 MG손해보험은 135.2%로 보험업계 최저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MG손보의 경우 금융당국의 권고기준에도 못 미쳐 이달 중 1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추진 중이다.
문제는 최근 시장금리 상승으로 손보사 RBC가 더욱 하락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평가익이 줄어들면서 가용자본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는 2023년 신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비율(K-CIS)이 도입되면 RBC가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책임준비금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고, 리스크 산출 기준이 현재보다 강화되서다.
◇ 무해지환급 보험료적립금 가용자본 인정?…금감원 "NO"
금융위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금감원은 손보협회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내부 검토를 마쳤다. 무해지환급금 보험의 보험료적립금은 계약자에 대한 명확한 부채로 인식해야 하고, ICPs의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책적 판단의 영역으로도 보기 곤란하다고 금감원은 진단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보험료 납입기간에는 해지환급금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해당 보험료적립금은 유지 계약을 위한 적립금으로 보험사가 임의로 사용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금융위에서도 무해지환급금 보험의 보험료적립금은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