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체외진단업체 씨젠(Seegene)에 또 뭔 일이 생겼다. 씨젠의료재단이 9~12월 씨젠 주식을 사들이는 데 100억원을 쐈다. 정작 천(千)씨 오너 집안은 성공의 열매를 맛보느라 주식을 바꿔 ‘캐시’를 쥐는 데 ‘열일’해온 점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씨젠의 진한 ‘핏줄 경영’ 말고도 지배구조 측면에서 요즘 부쩍 의미심장하게 박히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씨젠의료재단이다. 우선 반토막 난 지분을 보강하는 카드로 요긴하게 쓰일 기세다.
한 가지 더. 지금은 씨젠보다 ‘귀하신 몸’이 됐다. 돈을 더 잘 번다. 신사옥을 짓기 위해 2000억원을 들여 땅과 빌딩을 매입했을 정도로 현금이 차고 넘친다. 한데, 11년째 재단의 대표권을 쥐고 있는 이가 씨젠 창업자 천종윤(66) 대표의 동생이다. 천종기(61) 이사장이다. 한마디로 요즘은 동생이 더 잘나간다.
형-씨젠, 동생-재단 분할경영 구도
씨젠의료재단은 1990년 12월 설립된 임상검사 수탁검사기관인 재단법인 ‘네오딘의학연구소’가 전신(前身)이다. 원래는 유전체 분야의 검사시약·장비 공동개발 등을 위한 전략적 제휴사였지만 아예 편입해 버렸다. 2013년 3월의 일이다.
씨젠 오너인 천 대표가 당시 부사장으로 있던 천 이사장과 함께 이사진에 이름을 올린 게 이 때다. 모기업인 ‘씨젠’ 이름을 갖다 붙여 재단의 간판을 바꿔 단 것도 이듬해 1월이다.
‘[거버넌스워치] 씨젠 ②편’에서 얘기한, 올해 3월 씨젠 이사회에 재진입한 천 대표의 5살 위 고종사촌 또 등장한다. 최진수(71) 현 씨젠 사장이다. 재단에 사촌들과 함께 이사진에 합류한 뒤 2021년 3월까지 8년간 활동했다. 이래저래 천 사장은 띄엄띄엄 볼 존재가 아니다.
초기부터 천 이사장이 재단을 주도적으로 운영했다. 상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때가 2013년 5월이다. 무려 11년째다. 현 이사진 8명 중 천 대표도 이사로 있지만 비상임인 데다 무엇보다 재단의 대표권은 줄곧 천 이사장이 쥐고 있다.
즉, 재단 편입을 계기로 천 대표는 씨젠, 천 이사장은 재단을 각각 맡아 분할 경영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바꿔 말하면 재단은 애초부터 창업공신이자 조력자였던 동생 몫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맞물려 천 이사장은 씨젠 경영에서는 차츰 발을 떼 왔다. 2000년 9월 씨젠 설립 당시 대표를 맡았다가 2002년 1월 형에게 내준 뒤로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자금을 관리하며 뒤를 받쳤던 이다.
이사장 취임 2년 뒤인 2015년 씨젠 고문으로 비켜났다. 2020년 3월에 가서는 아예 회사를 떠났다. 2010년 9월 상장 당시 4대주주로서 갖고 있던 5.8%의 주식도 이 중 300억원을 현금화해 지금은 2.22%로 축소된 상태다.
2년간 벌어들인 영업이익 ‘1조’
문제는 다음이다. 동생의 씨젠의료재단은 2019년 말까지만 해도 형의 씨젠에 비할 바 못됐다. 자기자본이 125억원으로 씨젠의 1530억원(연결기준)의 10분의 1도 안됐으니 말 다했다. 지금은 예전의 재단이 아니다.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여기, 그 증거 수치들이 수두룩하다.
재단은 현재 종합병원 및 일반 병·의원 등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진단의학검사, 분자진단검사, 병리검사 분야 등의 검체검사 수탁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장안빌딩에 위치한 본원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4개 검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총자산이 작년 말 9300억원으로 2019년 말(652억원)에 비해 14배 증가했다. 자기자본은 7660억원으로 무려 60배 넘게 불어났다. 그만큼 돈을 쓸어 담았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매출이 2020년 이후 치솟으며 작년에는 1조1100억원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2019년(1520억원)의 7배다. 영업이익은 31억원에서 2021~2022년 벌어들인 액수가 각각 4860억원, 5050억원이다. 2년간 1조원에 육박한다.
씨젠을 압도한다. 2021년 매출(연결기준) 1조3700억원을 찍은 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국면 진입으로 작년 8540억원으로 뒷걸음질 친 씨젠을 한참 앞질렀다. 작년 재단 영업이익은 씨젠 1960억원의 거의 3배다.
이유는 딴 게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씨젠 ‘대박 신화’의 기폭제가 된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확 뒤집어버렸다. 즉, PCR(유전자증폭) 기반의 분자진단 업체 씨젠만이 코로나19로 ‘잭팟’을 터트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재단은 검사 수요가 폭발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민간검사수탁기관으로서 ‘떼돈’을 벌었다.
현금 차고넘치는 의료재단, 신사옥 건립
얘기 하는 김에, 씨젠의료재단의 차고 넘치는 현금 유동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또 있다. 재단은 작년 6월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대형빌딩을 사들였다. 패션그룹형지 옛 사옥이자 복합쇼핑몰 ‘아트몰링 장안’이 있던 곳이다.
건물주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인트러스장안PFV에 지급한 액수가 1600억원이다. 이어 9월에는 바로 옆에 인접해 있는 개인 소유 지하 1층~지상 4층 상가건물도 360억원에 매입했다.
여기에 서울 본원 신사옥을 짓고 있다. 연면적 5만336㎡(약 1만6700평)에 지하 6층~지상 19층짜리 건물이다. 지난달 착공했다. 오는 2025년 하반기 완공이 목표다. 시공사는 CJ대한통운이다.
천 이사장은 신사옥 건립을 통해 임차건물인 본원을 비롯해 서울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검사부와 연구소․행정 및 사업 조직을 한데 모아 질병검사와 연구개발을 위한 거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반토막 난 千씨 집안 지분 보강 카드?
어찌됐든, 씨젠의료재단이 작년 말 100억원을 투입해 씨젠 주식을 사모은 것도 이렇듯 코로나19 발생 이후 돈을 쓸어 담은 뒤의 일이다. 앞서 2017년 7월~2018년 8월에도 주주로 등장해 사들이긴 했어도 당시 투입한 자금은 10억원 밖에 안됐다.
따라서 최근 재단의 행보는 외견상 동생이 형을 위해 지원사격에 나선 모양새다. 천 대표의 씨젠 지배력 측면에서 현금이 차고 넘치는 재단의 향후 쓰임새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천 대표의 개인지분이 2010년 9월 상장 당시에 비해 32.69%→18.21%, 일가를 합해봐야 61.05%→30.3%로 반토막이 났다는 얘기는 ‘[거버넌스워치] 씨젠 ②편’에 언급했다. 재단이 110억원을 주고 확보한 지분은 0.84%다. 비록 아직은 얼마 안되지만 이를 합하면 천 대표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31.14%다.
게다가 상장 이래 주식을 사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천 대표를 비롯한 창업 ‘4인방’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차익실현에 치중해 온 비춰보면 재단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예상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다. 과거 전력이 있어서다. 재단은 과거에도 씨젠의 주주로 등장한 적이 있다. 2013년 6~7월 장내에서 30억원을 주고 0.37%를 매입했다. 하지만 이듬해 2~7월 7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전량 털었다. (▶ [거버넌스워치] 씨젠 ④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