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수경기는 여전히 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고, 해외시장에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표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며 전열을 재정비한 일본 기업,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 기업 사이에서 한국 기업들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과거 장기침체 국면에서 생존에 나섰던 일본 기업들의 혁신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 한국 기업, 샌드위치 신세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 상반기 매출은 95조6554억원, 영업이익은 12조8773억원이었다. 단순 수치로는 여전히 거대한 규모지만 지난해 상반기 대비 매출은 9.78%, 영업이익은 17.85% 감소했다. 지난 2013년 상반기 매출 110조3325억원, 영업이익 18조3101억원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현대자동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현대차의 상반기 매출은 43조7643억원, 영업이익은 3조3389억원으로 전년보다 매출은 1.4%, 영업이익은 17.1% 감소했다. 2013년 상반기 역시 매출 44조4016억원, 영업이익은 4조256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모두 해가 지날수록 외형 줄고,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환율 등 대외변수 변동성이 커지면서 수출중심의 10대그룹 주력계열사들중 실적이 개선된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재계에서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나오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고,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4월 금융위기 이후 한·중·일 상장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성장성과 수익성 등의 지표에서 일본, 중국기업에 한참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아베정권 출범후 엔저가 유지되면서 수출경쟁력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일본기업은 2011년과 2013년 매출액 증가율이 3% 아래에 머물렀지만 2013년과 2014년은 11.5%와 4.7%를 기록하는 등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기업은 외형적인 성장속도는 둔화됐지만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기업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2011년 5.7%로 일본과 같은 수준을 기록한 이후 2012년에는 5.2%로 낮아지며 5.8%를 기록한 일본기업에 추월당했다.
특히 2013년에는 한국기업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5.0%로 낮아진 반면 일본은 6.8%를 기록했고, 2014년에는 각각 4.8%와 7.2%로 격차가 확대됐다. 전경련은 “한국기업은 내수업종 위주로 매출성장이 확대된 반면 수출주도 업종의 매출성장은 둔화됐다”며 “한국 주력 수출산업군에 포함된 업종은 중국의 성장둔화, 엔저로 인한 일본과의 경쟁심화 등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 일본 제조업, 어떻게 혁신했나
이에 따라 장기침체를 벗어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혁신 사례를 참고해 대응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대부분 한국 기업들이 일본 제조업의 조직이나 성장모델을 따라온 만큼 위기대응 방식에서도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조언이다.
특히 일본 히타치의 변신은 가장 주목할만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과거 반도체와 가전제품, PC 등 종합 전자기업이던 히타치는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변신을 시작하게 된다. 삼성전자 등의 성장으로 인해 기존 주력사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던 히타치는 금융위기 영향까지 더해지며 2008년 약 7873억엔, 한화로 10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히타치는 당시 사업구조로는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한다. 반도체는 물론 액정표시장치(LCD), 하드디스크드라이브, TV 등 전자관련 사업들을 잇따라 매각하고, 사회 인프라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탈리아 철도업체인 핀메카니카를 2500억엔(한화 2조3000억원 가량)에 매입하는 등 지난 7년간 약 20조원 규모의 인수합병도 단행했다.
종합 전자기업에서 각종 인프라 시스템, 정보·통신 시스템, 전력 시스템 등 이른바 인프라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으로 변신한 히타치는 지난해 6000억엔 가량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도 사상 최대인 9조7600억엔에 달했다. 인프라 사업의 활황에 힘입어 실적개선 추세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파나소닉 역시 지난 2012년 최고경영자를 교체한 후 기존 B2C 전자사업에서 자동차 및 산업용 솔루션, 에너지 솔루션, 기업용 오디오·비디오 사업 등 B2B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목표 고객군 역시 일반 소비자에서 주택, 자동차, 기업, 항공, 사회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3819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영업이익률 5%대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가전업체였던 샤프는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 밀려 경쟁력을 잃은 LCD를 고집하면서 TV 등 가전분야마저도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샤프는 최근 유럽에 이어 북미 TV시장에서 철수했고, 멕시코 공장은 중국 업체에게 매각했다. 올해 1000억엔이상 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같은 '선택과 집중'은 다른 기업에서도 나타난다. 신일본제철은 지난 2012년 스미모토금속과 합병해 신일철주금으로 거듭났다. 합병후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신일철주금은 지난 2013 회계연도에 매출 5조5161억엔, 영업이익 2983억엔으로 5.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포스코의 영업이익률 4.8%보다도 높았다. 위기극복과 생존의 해법은 혁신과 구조조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이같은 기업의 위기대응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이 아베노믹스 시행과정에서 산업경쟁력 강화법을 시행, 기업들의 사업재편을 촉진하고 각종 지원을 해주는 등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줬다는 설명이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의 화력발전분야 통합, 소니의 PC사업 매각, 라구나텐보스의 테마파크 재건사업 등의 과정에서도 정부의 특별법이나 세제지원이 이뤄졌다.
한국도 최근 사업재편지원특별법 마련에 나섰지만 일부 항목은 재계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았고, 국회내에서도 이견이 제기되는 등 법 통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위기대응을 위해선 선제적인 사업재편이 필요하지만 언제 이를 실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 국제경제세미나 개최
비즈니스워치가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코트라(KOTRA)가 후원하는 국제경제 세미나 '위기의 한국경제,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가 내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부활하고 있는 일본 경제와 산업계의 현실을 살펴보고, 급속한 고령화와 저성장 등으로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는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 지를 점검하는 자리다.
세미나 세션1에서는 나오유키 요시노 ADB연구소장이 '아베노믹스와 일본경제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도시히로 이호리(Toshihiro Ihori)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GRIPS) 교수는 '고령화가 일본 경제에 미친 충격'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세션2에서는 정혁 KOTRA 일본지역본부장이 '일본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와 전략'에 대해,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일본의 시사점과 한국 산업계 대응전략'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한다. 패널 토론에서는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모더레이터)이 주제 발표자들과 함께 토론과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세미나는 11일 오후 2시~6시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에서 개최되며 참가비는 무료다. 사전 참가신청은 비즈니스워치 홈페이지(http://www.bizwatch.co.kr)나 세미나 사무국(02-783-3311)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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