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피지컬 AI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완전히 품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잔여 지분을 현대차그룹에 매각할 수 있는 풋옵션 행사 기한이 도래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해당 지분을 사들여 지분 100% 확보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다.
완성차·AI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정리가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최초 계약 당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공개(IPO)가 불발될 경우 현대차그룹이 소프트뱅크의 잔여 지분을 다시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도 보스턴다이내믹스 IPO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기업가치가 최초 투자 시기보다 크게 올라 투자금 회수에 나설 요인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소프트뱅크,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정리 가능성 큰 이유
23일 업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지난 21일부터 30일 간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에 대한 풋옵션 행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0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에는 올해 6월까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IPO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소프트뱅크가 잔여 지분을 현대차그룹에 매각할 수 있는 풋옵션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동시에 현대차그룹 역시 소프트뱅크가 풋옵션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잔여 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 성격의 권리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시 말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IPO가 무산될 경우 소프트뱅크의 잔여 지분이 현대차그룹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설계된 계약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모두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율은 △HMG글로벌 56.4% △정의선 현대차 회장 22.6% △현대글로비스 11.25% △소프트뱅크 9.65%다. HMG글로벌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출자한 투자법인으로 각 사는 HMG글로벌을 통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간접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모두 사들이면 외부의 개입이 사실상 차단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간계약에서는 같은 지분을 두고 매도자의 풋옵션과 매수자의 콜옵션을 동시에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정 시점까지 IPO 등 사전에 정한 유동화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매도자는 지분을 팔 권리를 갖고, 매수자는 해당 지분을 사들일 권리를 갖는 방식"이라며 "이 경우 지분 보유자가 상장까지 기다려 더 큰 차익을 노리는 선택지는 계약상 제한될 수 있어 소프트뱅크의 보폭도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가 그간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추가 자금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분 정리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적자가 지속되면서 자금 수혈이 필요했을 때 현대차그룹은 반복적인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지만, 소프트뱅크는 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뱅크의 지분율이 희석되면서 2021년 20%에서 현재 9.65%까지 낮아졌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가 크게 오른 점도 소프트뱅크의 엑시트 유인을 키우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2017년 구글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을 당시 거래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1억~2억달러(1530억원~3060억원)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2021년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당시 기업가치는 11억달러(1조6900억원)로 평가됐다. 이번 잔여 지분 거래 규모가 약 3억2500(5000억원)만달러가량으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단순 환산 기준 30억달러(4조6000억원)대까지 높아진 것으로 전망된다.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투자였던 만큼 이번 기회에 잔여 지분을 정리할 유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성장성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만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지분은 경영권이 없는 비상장 소수지분이어서 영향력 행사가 제한적인 것도 고려될 요인이라는 거다.
앞선 관계자는 "소프트뱅크가 글로벌 AI 분야에서 매우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AI 생태계 내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것은 맞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10% 안팎만으로는 전략적 의미가 제한적일 수 있다"며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기업이나 영역에 투자금을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음 스텝은 IPO 기반 다지기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 역시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확보에 긍정적이라고 본다. 소프트뱅크 측이 옵션 행사에 대한 의사결정을 마무리하면 이후 이사회를 열고 속전속결로 지분 매입에 나설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따라서 차후 주목받는 건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대한 확대된 영향력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다. 업계에서는 미국 주식시장 상장 추진이 본격화할 거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단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상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할 거라는 게 중론이다.
현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황은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매출 1501억원, 당기순손실 528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30%가량 증가했지만 순손실은 19% 늘었다.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거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중장기 목표인 IPO는 현대차그룹이 100% 지분을 확보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어렵다"라며 "당장은 대규모 상용화 매출을 입증하기도 어렵거니와 시장 기대치만큼의 기업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큰 상황이다. 지금 IPO를 추진하는 건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상장을 위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대감을 끌어올린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의 상용화와 이를 통한 실제 매출 상승 여부 등이 핵심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8년까지 연 3만대 규모의 아틀라스 생산체계를 갖추고 현대차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 현장에 아틀라스를 배치한 이후 안정성과 경제성을 검증해 외부 고객으로 확장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져 있는 거다.
AI업계 관계자는 "AI 산업 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라며 "현대차그룹이 지분 100%를 보유하면 이러한 속도감을 보유할 수 있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피지컬AI 개발 시계 역시 빨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초 양산 물량 검증을 위한 인프라를 현대차그룹이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 시점까지 얼마나 기술력을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인수 이후 추가 투자 규모 등을 통해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의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