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통해 장기침체에 빠져 있던 일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아베노믹스의 성공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여전히 고령화와 소비부진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베정권 출범후 시행되고 있는 금융확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도쿄에 있는 ADB(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에서 만난 나오유키 요시노(Naoyuki Yoshino) ADB 연구소장은 “노인과 청년이 같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경기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인데, 이 문제는 ‘돈’(금융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 출산율은 1.21명으로, 저출산 현상이 일본(1.42명)보다도 심각하다.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일본보다 더 험난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요시노 소장은 “한국 기업이 먼저 나서 길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돈 뿌려도 노인은 증가”
2013년 출범한 아베노믹스는 3개의 화살(금융완화·재정확대·구조개혁)을 쏘며, 침체에 빠진 일본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소비자물가를 2%로 끌어올려 경기를 살리고, 성장동력을 장착하겠다는 계획이다. 요시노 소장은 “과거 정권에 비해 대담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3년 차에 접어든 아베노믹스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첫 번째 화살(금융완화)로 엔저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은 강화됐다. 기업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청년들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공공사업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풀었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고령화 문제다.
요시노 소장은 “일본 경기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노인은 늘고, 청년은 줄어드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는 금융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아무리 돈을 뿌려도 고령자는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고령화는 복지 문제로 이어지고, 복지는 재정 이슈와 직결된다. 요시노 소장은 “아베노믹스 두 번째 화살의 핵심은 재정적자 축소인데, 이를 위해 2014년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렸지만 재정적자를 줄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복지비용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시노 소장은 “지금과 같은 수준의 높은 사회보장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소득세를 20%까지 올려야 하고, 소득세를 더 내고 싶지 않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사회보장을 포기해야 한다”며 “세수와 재정, 사회보장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일본 닮아가는 한국, 발빠른 대응 필요
요시노 소장은 경제성장 단계나 고령화 문제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답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섬유에서 시작해 전기·전자, 자동차, IT 등으로 발전해 왔는데, 산업성장의 방식과 구조가 일본과 굉장히 닮았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 역시 구조적으로 장기적 성장둔화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구조개혁의 큰 그림으로는 ▲임금체계 개편 ▲출산율 제고 노력 ▲농업 개혁 등을 제시했다. 이 부분은 아베노믹스의 세번째 화살인 구조개혁과 관련된 이슈들이다.
요시노 소장은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한국의 직장인들 역시 50~60세에 제2의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기업의 임금정책은 생산성에 따라 변동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성이 높은) 45살까지 임금을 높여가는 구조를 만들고, 이후 생산성이 떨어지면 임금을 조금씩 낮추는 방식을 택한다면 기업의 비용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60이 넘는 사람도 적은 임금을 받고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노인이 청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인식이 있는데,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며 "노인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복지 비용 역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육시설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요시노 소장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젊은 여성들이 육아에 대한 고민없이 일할 수 있도록 보육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 개혁과 관련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농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고향에 투자할 수 있는 ‘고향펀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은 작년부터 ‘고향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며 “농업을 하고 싶지만, 은행에서 대출 받기 힘들어 사업 기회를 잃게 되는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일본의 한 온천지역 료칸(여관)은 고향펀드의 투자를 받아 낡은 숙박시설을 개조해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올렸고, 일본 원전사태 이후 풍력발전에 투자하는 고향펀드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나오유키 요시노 소장은 미국 뉴욕주립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를 지냈고, 현재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일본 금융청 금융연구센터 선임자문관, 일본 재무설계표준위원회(FPSB) 회장 등을 역임했다. 요시노 소장은 오는 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비즈니스워치 주최 국제경제세미나에 참석, '아베노믹스와 일본경제 전망'에 대해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 국제경제세미나 개최 비즈니스워치가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코트라(KOTRA)가 후원하는 국제경제 세미나 '위기의 한국경제,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가 내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부활하고 있는 일본 경제와 산업계의 현실을 살펴보고, 급속한 고령화와 저성장 등으로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는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 지를 점검하는 자리다. 세미나 세션1에서는 나오유키 요시노 ADB연구소장이 '아베노믹스와 일본경제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도시히로 이호리(Toshihiro Ihori)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GRIPS) 교수는 '고령화가 일본 경제에 미친 충격'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세션2에서는 정혁 KOTRA 일본지역본부장이 '일본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와 전략'에 대해,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일본의 시사점과 한국 산업계 대응전략'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한다. 패널 토론에서는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모더레이터로 진행을 맡는다. 세미나는 11일 오후 2시~6시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에서 개최되며 참가비는 무료다. 사전 참가신청은 비즈니스워치 홈페이지(http://www.bizwatch.co.kr)나 세미나 사무국(02-783-3311)으로 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