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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디자인 철학, 21세기에도 통했다

  • 2017.06.26(월) 21:19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 밑바탕엔 혁신기술
구글·애플부터 LG·삼성까지 '단순함이 미학'

보름달처럼 크고 둥글게 생긴 '백자달항아리'는 순백의 단순 간결함으로 미술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약 1세기 동안 풍미했던 달항아리는 포근함을 주는 곡선과 꾸밈없는 순박함으로 지금도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예술의 정수'로 꼽힌다.

 

▲ 보물 1437호 백자달항아리. 생긴 모양이 달덩이처럼 둥그렇고 원만하다고 하여 달항아리로 불린다. 몸체는 완전히 둥글지도 않고 부드럽고 여유 있는 둥근 모양이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화려함이 덜해 제작 자체가 수월해보이지만 사실 백자는 청자보다 더 뛰어난 기술이 필요했던 작품이다.

도자기는 철 성분이 많을수록 구웠을 때 색깔이 어두워진다. 백자를 만들려면 점토에서 철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또한 백자는 청자보다 높은 온도인 1250℃ 이상에 굽는다. 질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성형후 굽는데까지 적지 않은 수고로움이 따른다. 이 때문에 조선 초기 백자는 왕실 등 매우 제한된 계급만 쓰는 특권의 상징이었다.

도자기 자체의 담백한 멋을 살린 백자는 '뺄셈의 미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백자를 굽는 도공은 화려함보다는 수수함, 정밀함보다는 넉넉함을 위해 기교를 버리고 인내와 절제를 택했다.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보다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뺄셈의 가치는 21세기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군더더기를 없애 사물의 특성을 최대한 부각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건축, 인테리어, 패션 등 곳곳에 뻗어있다.

검색창 하나만 달랑 보여주는 구글이 전세계 검색시장을 장악하고, 강박적으로 단순한 디자인에 집착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으로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면 미니멀리즘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값비싼 제품일수록 단순함을 내세우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LG전자의 '시그니처 올레드 TV W'는 한 대 가격이 3300만원(77인치)에 달한다. 이 제품은 회로판, 전원, 방송 수신칩 등 TV에 꼭 필요한 기능을 사운드바 역할을 하는 '이노베이션 스테이지'로 빼냈다. 대신 벽에는 두께 4㎜ 안팎의 패널 한장만 남겨 온전히 화면에만 몰두할 수 있게 했다.

별도의 광원(光原)이 필요한 LCD(액정표시장치) TV와 달리 픽셀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사용해 더 얇고 단순한 디자인이 가능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단순함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기술이 있었다.

 

▲ 벽에 착 달라붙어 있는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W'. 패널을 제외한 핵심기능을 사운드바 역할을 하는 '이노베이션 스테이지'로 뺐다.

  
삼성전자는 아예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기능을 냉장고('셰프컬렉션 포슬린')에 구현했다. 도자기는 구우면 부피가 변해 정밀한 규격의 가전제품 소재로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편견을 깨고 냉장고 내부를 도자기로 꾸몄다. 이 덕분에 포슬린 냉장고의 내부는 간결하면서도 도자기 소재가 주는 특유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가격은 삼성전자 냉장고 중 가장 비싼 1499만원(915ℓ)으로 책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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