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또 한 차례 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부재(不在)이후 삼성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2인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경영일선에서 전격 퇴진한다.
▲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낸 발표문에서도 “저의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라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용퇴 의사를 밝혔다.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자 반도체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경영인으로 올해 2월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이후 삼성전자의 경영을 총괄하며 삼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의 오랜 와병과 이재용 부회장의 수감으로 총수 부재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권오현 부회장마저 경영일선에서 퇴진키로 함에 따라 삼성전자를 넘어 삼성 전체에 수뇌부 부재 위기감이 고조될 전망이다.
특히 미래전략실마저 해체된 마당에 삼성 안팎에선 의사결정을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자칫 진공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실적 호전을 이끈 반도체사업은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이 필수인데, 빠른 의사결정이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권 부회장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권부회장은 조만간 이재용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게 사퇴 결심을 전하며 이해를 구할 예정이고 후임자도 추천할 계획이다.
권 부회장은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부회장은 “저의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권부회장은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사장과 반도체 사업부 사장을 거쳐 2012년부터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왔다. 2016년부터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도 겸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