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독주였다. 반도체 하나로 SK그룹의 이익창출력을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룹의 주축인 에너지와 통신이 힘을 쓰지 못했다. 반도체 혼자 해낸 일이기에 아쉬움을 남겼다.
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하이닉스 등 SK그룹 주요 7개 계열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총 5조5087억원으로 나타났다. 직전 분기에 비해 4.2% 줄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주면 38.0% 늘어난 수치다.
뭐니뭐니해도 SK하이닉스의 고공행진이 두드러졌다. 7개사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영업이익 비중이 79.3%에 달했다. 2016년 1분기 30% 안팎이던 SK하이닉스의 비중은 그해 4분기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넘게 담당할 정도로 커지더니 이번에는 80%에 육박했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반도체 호황에 올라탄 효과가 컸다. 스마트폰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주춤해진 반도체 수요를 서버용 제품이 보완하면서 실적을 끌어올렸다.
SK하이닉스가 올해 들어 석달간 벌어들인 돈(영업이익)은 4조3673억원.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4조원대 영업이익을 내며 깔끔하게 출발했다. 영업이익률은 50.1%를 기록했다. 1000원짜리를 팔면 500원을 남길 정도로 어마무시한 이익창출력이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그룹 전체가 반도체 경기에 민감한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경기가 좋을 땐 문제 없을지 몰라도 반대의 상황이라면 그룹 전체가 혹독한 시련에 맞닥뜨릴 수 있다. 지난해부터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나온 반도체 고점론이 현실화하지 않은 게 다행인 셈이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 굴기를 노리는 중국의 매서운 추격에 직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3000억위안(약 5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중국은 2014년에도 중앙 및 지방 국유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1400억위안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70여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등 반도체 국산화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정부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 승인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자국 반도체산업을 키우려는 야심이 아니고선 설명하기 어렵다. SK하이닉스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 등은 지난해 9월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기로 하고 각국의 반독점 심사를 받았는데 최대 관문인 중국의 미온적인 움직임으로 인수 자체가 늦어지고 있다.
관심은 반도체를 대신할 캐시카우가 SK그룹에 존재하는지에 모아진다. SK그룹은 섬유에서 시작해 정유, 이동통신, 반도체로 영역을 확장하며 덩치를 키웠다. 안타깝게도 주력인 반도체를 빼면 정유와 이동통신의 성장세에는 제동이 걸렸다.
올해 1분만 보더라도 그렇다.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 7116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에 비해 29.1% 줄었고 SK텔레콤은 3255억원으로 20.7% 감소했다. 두 회사가 그룹내에서 차지하는 영업이익 비중도 지난해 1분기 각각 25.2%, 10.3%에서 이번에는 12.9%, 5.9%로 쪼그라들었다. SK하이닉스의 이익기여도가 워낙 컸기 때문이지만 기존 주력사업들이 주춤했던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업에서 정제마진 하락으로 스텝이 꼬였고 부쩍 몸집을 키웠던 화학부문도 수익성이 시들했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비정유부문의 영업이익 비중이 60%를 넘어 정유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성장한계 극복의 일환으로 국내 2위 보안업체인 ADT 캡스를 2조9700억원(부채 포함)에 인수하며 '탈(脫) 통신'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그룹의 중소사업군 중에선 SKC가 선전했다. 주력인 화학사업의 호조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 증가한 41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반면 모태기업인 SK네트웍스는 30.5% 줄어든 24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영업이익률은 1%에도 못미쳤다. 패션·에너지 관련사업을 매각하고 새로 탑재한 렌털사업이 제자리를 찾는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