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결국 실패했다.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른지 20년만에 경영권을 사실상 잃게 됐다. 아울러 주주 손에 밀려난 첫 총수라는 불명예도 함께 떠안게 됐다.
대한항공은 이날 오전 9시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제 57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정관 일부 변경의 건▲이사 선임의 건▲이사보수 한도 승인의 건을 다뤘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았던 사내이사 1인(조양호), 사외이사 1인(박남규) 등 이사 선임과 관련, 사내이사 재선임은 부결, 사외이사 신규 선임은 승인됐다.
대한항공은 정관상 이사 선임시 참석주주의 3분의 2(66.7%)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은 64.1% 찬성에 그쳤다.
의장을 맡은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의 부결 선언 직후 일부 주주가 "현장에 있는 주주가 찬반 투표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주총이 위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현장 주식에 대한 찬반도 집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우 의장은 "사전 확보한 위임장 등 대주주와 외국인 대주주 주식수를 오전에 이미 파악한 데다 현장에 참석한 주주들이 몇십~몇백만주를 더 가져와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조양호 회장은 지난 1999년 대한항공 수장직에 오른 후 20년간 지켜온 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번 조 회장의 연임 실패는 대기업 총수가 주주들에 의해 이사회에서 밀려나는 첫번째 사례가 된다. 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영향력을 발휘해 오너를 이사회에서 배제한 것도 처음이다.
대한항공은 주총을 마치면 사내이사 재선임과 관련 임시 주총을 열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현재까지 조양호 회장, 조원태 사장, 우기홍 부사장 3인 각자 대표 체제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조 회장이 연임에 실패함에 따라 조 사장과 우 부사장의 2인 대표체제로 바뀌게 된다.
다만 우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잘 참여하지 않는 등 사내 지배력을 감안할 때 조원태 사장이 대한항공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나머지 의안인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박남규 사외이사 신임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은 모두 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