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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다 찼어요' 8인치 웨이퍼, 살아난 이유

  • 2020.04.20(월) 15:12

'다품종 소량' 생산 강점…시스템반도체 수요 증가
SK, 관련기업 투자 등 영역 확대…DB, 최대 매출 '청신호'

"작년부터 올해 주문 물량이 꽉 찼습니다."

구식으로 취급 받던 8인치(200㎜) 웨이퍼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경쟁력인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뒤쳐졌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팹리스(Fabless) 업체들로부터 주문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 웨이퍼는 빛을 받아 들이는 이미지센서, 사용자 손가락을 인식해 화면을 조작하는데 쓰이는 드라이버IC(DDI), 전력관리칩 등 규격이 일정하지 않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 생산에 유용하다. 12인치 웨이퍼(300㎜)는 직경이 커 생산량이 200㎜보다 2.5배 많지만, 원가가 높다. 이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의 두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로직 반도체와 같이 규격이 일정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생산에 주로 쓰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300㎜와 200㎜ 웨이퍼 기반 반도체는 생산되는 제품의 부가가치 자체가 다르다"며 "200㎜ 기반 제품은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들이 많다"고 말했다. 

설비가 부족해진 것도 최근 200㎜ 웨이퍼 활용도가 높아진 이유중 하나다. 2010년을 전후해 반도체 업체들은 200㎜ 웨이퍼용 반도체 설비를 점차 폐쇄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반도체 시장을 주도한 200㎜ 웨이퍼 설비는 그 비중이 최근 20% 후반대까지 쪼그라들었다. 300㎜ 웨이퍼 설비는 60%로 과반이 넘는다.

반도체 업체들이 직경이 작은 웨이퍼를 외면한 것은 낮은 생산성 때문이다. 200㎜ 웨이퍼는 90나노미터(1nm= 10억분의 1미터) 이하로 반도체 선폭을 미세하게 만들 수 없다. 회로 선폭이 좁아질수록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아지고 정보를 담은 전자 이동속도가 빨라져 성능도 좋아지지만 200mm 웨이퍼는 원판 자체가 작아 한계가 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전략적으로 200㎜ 설비를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회로 선폭 65nm 이하 고부가 최첨단 로직 반도체의 경우 300㎜를, 그 이상은 200㎜ 설비를 쓴다. SK하이닉스는 1000만 화소 이하 이미지센서,  DDI 등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모두 200㎜ 설비에서 만든다.

하지만 경쟁력을 잃어가던 200mm 생산라인은 최근 사물인터넷 시대 본격화 등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하다는 강점을 활용해 생산설비를 갖추지 않은 팹리스 업체들의 위탁생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실제 경영성과도 좋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 웨이퍼용 반도체가 주력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는 지난해 연간 매출 6615억원, 영업이익 941억원을 거뒀다. 재작년보다 매출은 19.3%, 영업이익은 70.8% 늘었다. 이 회사는 SK하이닉스가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 만든 자회사다.

200㎜ 웨이퍼 반도체 위탁 생산 특화기업 DB하이텍은 지난해 매출 8074억원, 영업이익 1813억원을 거뒀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2018년보다  20.6%, 60.4% 늘었다. 매출액은 사상 최대치다. 웨이퍼 투입량은 지난해 월간 12만2000장으로 전년 대비 5000장 늘었다.

앞으로 시장 전망도 밝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200㎜ 웨이퍼 반도체 공장 월 생산량은 오는 2022년 650만장으로 2019년 대비 17% 증가할 전망이다. 

삼성과 SK도 이같은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목표를 제시하며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공정을 저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중소형 팹리스들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현지 업체들을 중심으로 위탁생산 수요를 잡기 위해 지난해 말 중국 우시성에 200㎜ 웨이퍼 공장을 옮겼다. SK하이닉스는 여기에 더해 지난달 31일 200㎜ 웨이퍼 전용 국내 매그나칩 파운드리 사업부를 인수한 특수목적회사(SPC)에  유한책임투자자(LP)로 2900억원을 출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간 200㎜ 웨이퍼 시장이 줄어들며 여러 업체가 망가졌다. 이 때문에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맞추지 못할 정도"라며 "장기적으로 시장 파이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웨이퍼란
웨이퍼는 반도체 원판이다. 실리콘 재질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고 그에 맞춰 얇게 잘라내면 반도체(다이)가 만들어진다. 웨이퍼의 지름에 따라 200mm(8인치)와 300mm(12인치)로 나눠진다. 원판의 크기가 다른 만큼 같은 공정을 거친다고 가정할 경우 생산되는 반도체의 수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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