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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배터리 3사, 폴란드·헝가리만 찾는 이유

  • 2021.06.07(월) 07:35

LG-폴란드 '오랜 인연'…LG전자 생산기지도
가성비 뛰어난 유럽 교두보…생태계도 확대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 지역으로 폴란드와 독일 등을 검토 중이고, 체코도 검토 대상 중 하나입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달 말 체코를 방문해 현지 정치인을 만나서 했다는 말인데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가 체코를? 언제부터?'라는 반응이 LG 내부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폴란드에 2025년까지 7조원에 달하는 장기적이고 대규모인 투자를 계획해 실행하고 있어서죠.

대기업의 생산거점 확보를 위한 투자가 한 국가에서 지역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국가를 바꾸는 것은 간단치 않습니다. 현지 세제 혜택이나 전반적인 산업 인프라, 원재료 및 부품 조달과 판매망 확보 등이 모두 고려해야 할 조건이기 때문이라서죠.

고위 정치인의 발언이라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LG에너지솔루션도 꽤 난처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유럽 지역 공장 증설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나, 구체적 지역은 정해진 것이 없다"라고 하네요.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배터리 3사가 찜한 '폴란드·헝가리'

사실 LG에너지솔루션(LG화학 100% 자회사)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의 유럽 공장 투자는 폴란드와 헝가리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장기간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유럽은 지난해 전기차가 140만대 팔린 세계적 수준의 시장이라 배터리 업체들도 현지화를 하려면 현지 공장이 필수적이긴 합니다. 그런데 폴란드와 헝가리는 지난해 기준 전기차 등록 대수가 각각 1만대가 되지 않는 곳입니다. 어떤 매력이 국내 배터리 3사의 이 두 나라에 투자금을 풀게 하는 것일까요.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에서 브로츠와프 등지의 공장증설에 2016~2025년까지 6조7514억원 투자하는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올 1분기까지 모두 4조909억원을 투자했습니다. 1분기에만 689억원을 투자했죠. 앞으로 2조6605억원을 더 투자할 계획인데 이게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투자 규모는 미국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규모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큽니다. LG는 미국 공장에 2020~2023년까지 2조5874억원을 투자할 계획이고요, 중국은 2곳의 공장에 2025년까지 각각 2조2859억원, 3조3834억원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 지역 공장 증설에 9421억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지난 2월 밝혔습니다. 현지법인 관련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지급보증하는 등의 방식으로 투자한 것입니다. 

삼성SDI는 오스트리아에도 공장이 있긴 한데요. 2015년 오스트리아의 전기차 배터리팩 업체 '마그나 슈타이어 배터리 시스템즈'를 인수하면서 운영중인 곳입니다. 이 공장은 패키지 공장이라서, 이른바 배터리 팩을 조립하는 곳으로 보면 됩니다. 흔히 말하는 전기차 배터리 셀 공장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부터 과감한 투자 계획을 밝혔죠. 지난 1월 이 회사는 헝가리 이반차 지역 제3공장 착공을 올 3분기부터 시작해 2028년까지 2조6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했습니다. 1, 2공장은 헝가리 코마롬 지역에 있죠. 참고로 삼성SDI 공장이 있는 괴드와는 동서로 100km가량 떨어졌다고 합니다.

SK이노베이션의 유럽 전기차 배터리 공장 위치./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세제 혜택 얼마나 되길래

그렇다면 배터리 3사가 폴란드, 헝가리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폴란드와 헝가리 현지 시장을 노리는 것일까요. 

그렇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코트라에 따르면 작년 폴란드에서 등록된 전기차 규모는 하이브리드를 포함해 9000대 규모입니다. 헝가리의 전기차 등록대수도 9000대 규모죠. 이들 국가의 전기차 등록대수는 모두 전년보다 100% 이상 증가하는 등 성장세가 뚜렷하지만, 13만6000대 규모의 독일 등와 비교하면 덩치가 미미한 수준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배터리 3사의 폴란드·헝가리 투자가 활발한 이유 중 하나로 현지 정부의 세제 혜택 등 투자 지원책을 꼽습니다. 폴란드는 2018년 전국을 경제특구로 변경하고,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전국 어디서나 법인세 감면 혜택을 제공합니다. 중앙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와 경제특구 법인세 감면은 투자 금액이 1000억원 이상이면 동시 적용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특히 폴란드는 LG와 오랜 인연을 가진 나라입니다. 2005년 LG전자의 브로츠와프 생산거점 구축을 시작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 등 LG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유럽시장 공략의 전진기지로 삼는 곳이 이 나라입니다. 

헝가리도 세계 기업들에게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작년 기준 법인세율은 9%로 세계 최저 수준이고, 투자 규모와 고용 수준에 따라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낮은 가격에 토지를 제공하는 정책도 있습니다. 헝가리는 기준금리 0.9%를 2016년 5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유지하고 포린트화 약세 정책을 추진해 수출에 유리한 경제 구조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 전진기지서 '생태계' 활짝

헝가리와 폴란드는 지리적 입지 상 유럽의 완성차 업체와 협력 가능성도 높습니다. 자동차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이나 프랑스와 인접했기 때문입니다. 근거리에서 저비용으로 핵심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셈입니다. 헝가리, 폴란드 내에서도 외부 사업자와 협력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독일 벤츠, BMW, 아우디 등이 헝가리에 제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만 진출한 게 아닙니다. 일본의 분리막 업체 도레이나 중국 상해은첩(SEMCORP)도 헝가리에 진출했습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자리를 잡은 것을 계기로 생태계도 형성됩니다. 폴란드의 경우 LG의 협력사인 LS전선이 2017년 말 지에르조니우프 지역에 전기차 배터리 부품 생산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금형, 사출 등을 하는 국내 중소기업들도 폴란드에 진출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 관련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합니다. 엔켐(전해액), 후성(전해질) 등이 진출했죠.

자사 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폴란드에서 3분기부터 분리막 양산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SK넥실리스도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로 쓰이는 동박 공장을 폴란드에 짓는 방안을 검토중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인건비, 세제혜택, 물류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유럽에서 해당 지역을 선정한 것"이라며 "폭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도 기대되는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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