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드래곤 이후 6년 만
주식시장의 '뜨거운 감자'는 물적분할입니다. 대형 상장사 가운데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워낙 많은데요. 이마트가 상장을 앞둔 SSG닷컴을 물적분할로 떼어냈고 세아베스틸과 NHN, 만도, 포스코, 한화솔루션 등이 물적분할 추진 계획을 밝혔습니다.
CJ 그룹의 종합 콘텐츠 계열사 CJ ENM도 물적분할을 앞두고 있습니다. CJ ENM은 사업을 크게 커머스·미디어·영화·음악 4개로 나눠 하고 있는데요. 커머스를 제외한 3개 부문에서 예능·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 제작 기능을 맡고 있는 사업부들을 한 데 모아 신설 제작법인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
CJ ENM은 최근 CJ 그룹 내에서 가장 먼저 '내부 개혁'을 선언한 곳이기도 합니다. 연공제 직급과 부서·팀제를 없애고 자사주 보상제를 도입한단 것인데요. 부서를 해체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하면 신설법인으로의 직원 이동이 원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CJ ENM이 분할을 대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우리도 월트디즈니처럼…
CJ ENM이 분할과 관련해 롤모델로 보고 있는 곳은 월트디즈니입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디즈니픽처스 외에도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서치라이트 등 여러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수출하고 있는데요. CJ ENM도 '멀티 장르 스튜디오'를 보유해 IP(지적재산권) 수입을 극대화하겠단 계획입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도 '글로벌 CJ ENM' 작업의 연장선이란 것이죠. 스튜디오드래곤 역시 지난 2016년 물적분할돼 독립법인으로 떨어져 나온 이후 해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드라마 시리즈물을 공급하며 IP 수입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제작 환경의 독립성이 강화되고 의사결정구조가 단순화된 덕분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구조개편을 통해 모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구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CJ 그룹은 향후 3년간 글로벌 성장 엔진에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인데요. 유력 후보가 CJ ENM입니다. CJ ENM은 최근 빚을 내 '라라랜드' 제작사 엔데버스튜디오를 인수하고, SM엔터테인먼트 지분 인수도 검토 중이라 그룹의 자금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죠.
가벼워진 CJ ENM 값어치는?
하지만 '모회사 디스카운트'의 표본이 될 우려도 있습니다. 이는 모회사가 유력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할하면서 모회사의 기업가치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CJ ENM에서 꽤 큰 수익을 담당하고 있는 각종 제작 사업부가 떨어져 나간다면 회사엔 커머스와 TV 광고 판매 사업부문 등만 남게 됩니다. 이들은 성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입니다.
신설법인을 상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겠죠. 연결기준 실적이 과거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CJ ENM이 신설법인을 만들어 상장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CJ ENM은 드라마 제작부문을 지금의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으로 물적분할한 뒤 1년반 만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죠.
내부 불만이 만만치 않겠죠. CJ ENM이 직급제 폐지를 앞두고 있는 현재 회사 내부에선 연봉인상 근거가 약해진다며 각종 잡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을 자사주로 하기로 한 가운데 CJ ENM 주가마저 방어하지 못한다면 '충분한 보상'이 되지 못할 겁니다.
최근 정부가 기업 물적분할에 제동을 걸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물적분할을 둘러싼 규제가 깐깐해지기 전에 CJ ENM이 분할을 서두를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죠. '일장'으로 '일단'을 상쇄하기 위해선 자산 분할비율을 결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텐데요. CJ ENM이 어떻게 지혜를 발휘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