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은 더 이상 카메라 대용품이 아닌 전문가 카메라, 영화용 카메라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됐다. 영화용 카메라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컬러 연출과 큰 조명 없이 어두운 환경에서 쉽게 촬영할 수 있는 기동성이 합쳐졌다.
애플이 박찬욱 감독과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 애플 아이폰13 프로로 촬영한 영화 '일장춘몽'을 공개한 것이다.
일장춘몽은 무협 로맨스 장르의 약 20분 분량 단편 영화다. 마을의 은인 흰담비를 묻어줄 관을 만들 나무를 구하기 위해 장의사가 무덤을 파헤치고, 무덤의 주인인 검객이 깨어나 자신의 관을 되찾기 위해 소란을 벌이는 내용이다.
배우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을 비롯해 김우형 촬영감독, 밴드 이날치의 리더인 장영규 음악감독, 최근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로 이름을 알린 모니카 안무 감독 등이 참여했다.
아이폰13으로 영화 찍어보니
박 감독이 아이폰으로 단편 영화를 촬영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박 감독은 지난 2011년 아이폰4를 활용해 '파란만장'이라는 단편 영화를 촬영,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다.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파란만장은 단편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던 첫 작품이고 그 기억이 좋아 단편영화를 만들 기회가 있으면 꼭 해왔다"며 "이번에도 진보된 기술이 탑재된 기기로 새로운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박 감독은 아이폰13의 영상 촬영 기술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파란만장을 촬영할 때는 화질이 깨져 큰 화면으로 보기에 적당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효과를 넣어 고감도 필름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줬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고, 큰 모니터로 봐도 괜찮은 수준이 됐다"고 강조했다.
유해진 배우도 "일상생활 하는 모습을 영화처럼 촬영하는 것을 광고에서 봤을 때는 단순히 광고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를 보니 퀄리티가 좋아 놀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파란만장을 촬영할 당시에는 스마트폰에 탑재된 카메라로 영화 화질을 구현하기 어려워 후면에 별도의 DSLR 카메라를 부착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는 별도 장비 없이 아이폰13 프로 카메라만으로 촬영했다는 설명이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처음에는 후면 카메라에 카메라를 장착해서 촬영하는 것을 테스트하기도 했는데, 시네마틱 모드 등 아이폰13의 카메라 기능을 발견하고 촬영 당시에는 제품 그대로 촬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떤 기술 사용됐나
이번 영화에는 아이폰13의 고급 영상 촬영 기법이 사용됐다. 대표적인 기능이 시네마틱 모드다.
시네마틱 모드는 영상을 촬영할 때 자동으로 초점을 바꿔주는 기능이다. 인물이나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초점이 자동으로 바뀌고, 사용자가 원하는 초점을 설정할 수도 있다. 촬영 후 편집으로 초점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박 감독은 "화면 가까이 있는 피사체에서 멀리, 혹은 멀리서 가까이 포커스를 옮겨가는 것이 영화적인 순간인데 (아이폰13 프로 촬영으로) 멋있게 이뤄졌다"며 "시네마틱 모드를 작동하면 심도가 낮아지는데 아련한 느낌이 들고 가까이 있는 인물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폰13 프로가 프로레스(ProRes)를 지원하는 것도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이폰13은 촬영부터 편집, 공유까지 프로레스 방식의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첫 모델이다. 전작인 아이폰12 프로에서는 고화질 사진 포맷인 프로로우(ProRaw)를 최초 적용했다면, 아이폰13은 동영상 촬영에서도 전문가용 기능을 추가해 카메라 전반의 기능 향상을 꾀한 것이다.
프로레스는 애플의 고성능 동영상 코덱으로, 광고나 장편 영화 및 방송에서 최종 전송용 포맷으로 사용된다. 색 충실도가 높아 원본 영상의 색상과 촬영한 결과물의 색상 차이가 적다. 압축률이 낮아 화질 저하가 크지 않다. 파일 크기가 작아도 화질 저하 없이 이미지를 압축할 수 있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카메라 움직임이 많고 의상과 배경에 색이 많아 카메라가 이 정보를 다 담는 것이 중요했는데, 아이폰13에는 프로레스 파일 코덱이 새롭게 추가돼 카메라가 색상과 빛의 진폭 등을 다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촬영의 장점 '기동성'
스마트폰의 특성상 일반 카메라에 비해 기동성이 좋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았다. 보통의 영화 카메라로는 비싸고 복잡하고 거창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아이폰으로는 간단하게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야외에서 좋은 장면을 발견했을 때 일반 카메라로 촬영하면 셋팅 시간이 오래 필요한데, 스마트폰은 기동성이 있어 좋은 장면을 발견했을 때 몇 초 내에 원하는 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스마트폰 촬영의 장점을 언급했다.
김우형 촬영감독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친숙한 스마트폰 카메라 덕분에 활용이 수월했다"며 "상여 위 좁은 공간에서의 리깅 샷과 바닷물 속 가면 클로즈업 등 다양한 구도에서의 촬영이 용이했다"고 전했다.
배우들 역시 카메라 렌즈의 사이즈가 작아 작품에 몰입하기 좋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김옥빈 배우는 "평소 촬영할 때는 거대한 카메라 눈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폰 카메라가 너무 작아서 편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박정민 배우도 "카메라 크기가 작아지면서 부담감이 적어지는 게 확실히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으로 뭐든 찍어보자"
이번 영화는 애플의 '숏 인 아이폰(Shot on iPhone, 아이폰으로 찍다)' 캠페인의 일환이다. 애플은 아이폰의 프로급 영화 촬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 각국의 영화감독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스마트폰이 영화 촬영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연습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화면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어려운 문제인데, 스마트폰은 기동성이 좋아 여러 상황을 실험하기 좋다"며 "렌즈에 따른 느낌을 직접 촬영해 비교해보는 것이 촬영감독이나 배우가 되는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거창한 작업이라고 생각해 겁을 먹고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아이폰을 들고 나가서 생활이나 풍경 등 짧은 이야기를 찍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했다.
영화 일장춘몽은 이날 애플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세계에 동시 공개됐다.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촬영 현장을 기록한 사진도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은 영상 제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애플 스토어 매장에서 작품 내 여러 촬영 기법을 배워볼 수 있는 세션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