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글로벌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전 세계 시장의 1.6%에 불과하다. 기업 규모 역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대비 매우 작은 수준이다. 신약 개발에 약 2조원의 비용이 들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매출은 2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기업 규모와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수합병(M&A)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업계 M&A 동향과 M&A가 제약바이오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편집자]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여러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투자 실탄을 충분히 확보했다. 반면 최근 바이오 업종의 주가는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바이오텍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는 낮아졌다. 업계에선 바이오 업종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면서 현재가 인수합병(M&A) 적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성공적인 M&A 완주를 위한 전담 부서나 전문가를 둔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투자 여력 향상
코로나19 이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현금 곳간은 큰 폭으로 늘었다. 14일 비즈니스워치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15곳의 반기보고서를 집계한 결과, 올 상반기 이들 기업의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단기투자자산 포함)은 약 5조8199억원이었다. 지난 2020년 상반기 3조7432억원 수준이었던 현금성 자산이 2년 새 55%가량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은 곳은 SK바이오사이언스였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올 상반기 현금성 자산은 1조4893억원으로, 2020년 상반기(675억원)와 비교했을 때 약 22배 늘었다. 회사는 지난해 3월 기업공개(IPO)를 통해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또 수익성이 높은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 사업도 현금성 자산 확보에 힘을 보탰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창궐 이후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등과 백신 CMO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 상반기 현금성 자산은 1조3959억원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코로나19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회사는 팬데믹 이후 일라이릴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코로나19 치료제 CMO 계약을 맺었다. 이어 모더나 등과 코로나19 백신 완제의약품 CMO 등을 연이어 체결하며 3개 공장이 '풀(full)'에 가까운 가동률을 보이는 중이다.
이어 셀트리온, 유한양행의 현금성 자산이 각각 5798억원, 4699억원으로 높았다. 이들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 2020년 상반기 대비 약 20% 줄었지만, 재무 여력은 충분한 상태다. 셀트리온의 올 상반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244억원으로,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꺾였다. 이 밖에도 SK바이오팜, 광동제약, 동아에스티 등이 2000억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유지했다.
벤처 밸류에이션 부담↓…M&A 가능성은?
반면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면서 바이오 업종의 주가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바이오텍의 주가가 반영된 코스닥 제약 지수는 -8.9%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코스닥 제약 지수 수익률이 83%에 달했던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31일 KRX헬스케어지수는 2604.14에 마감됐다. 4645.57에 달했던 지난 2020년 12월보다 40% 이상 떨어졌다.
업계에선 바이오텍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완화된 만큼 M&A 기회는 더욱 늘었다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동안 바이오 업종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급등한 주가는 빅파마나 제약사가 바이오텍을 인수하거나 기업의 파이프라인을 도입하는 데 부담이 됐다"면서 "바이오 업종 전반적으로 주가가 많이 빠졌고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된 시기에 오히려 M&A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M&A를 성장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M&A를 위한 준비는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보통 M&A를 활발하게 하는 기업의 경우 M&A 전담 조직이나 관련 전문가를 둔다. 제약바이오 기업 15곳에 문의한 결과, 이들 기업 중 M&A 전담 조직이 있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업은 대부분 전략기획실, 재경기획팀 또는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M&A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을 내는 바이오텍이 거의 없는 데다 스타트업과 대형 제약사의 문화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바이오 업종은 M&A가 유독 힘든 분야로 꼽힌다"며 "현재 단순 지분 투자나 파이프라인 도입 등에 그치고 있는데 바이오 산업이 성장하려면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M&A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