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둔화로 배터리 업계 내 투자계획 수정이 잇따르는 가운데 삼성SDI의 여유가 돋보입니다. 최근 경쟁사들이 해외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인력 감축에 돌입한 반면 질적 성장 전략을 고수해온 삼성SDI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인데요. 이는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유형자산취득·CAPEX),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등 다양한 지표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3분기 R&D 비용 8364억원 ‘업계 선두’
최근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해외 투자 계획 재정립에 나섰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와 추진 중이던 튀르키예 합작법인 설립을 철회하고 미시간 공장 생산직원 170여명을 감원한다고 밝혔고요. SK온도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의 조지아주 공장 생산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시행키로 한 바 있습니다.
전기차 시장 침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2021년을 기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109%로 최고치를 찍은 후 2022년 56.9%, 2023년 36.4%로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업황 속에서도 삼성SDI는 투자계획 수정에 대한 별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향후 계획을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삼성SDI가 그간 추구해온 ‘질적 성장 전략’이 호평받는 배경이기도 한데요. 실제 삼성SDI는 설비 신·증설에 보수적 투자를 집행하는 대신 연구개발에 집중해왔습니다.
해당 기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 3분기 누적 기준 삼성SDI의 연구개발 비용은 8364억원입니다.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죠.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4.9%, 업계 내 선두입니다.
보수적 CAPEX 집행, 변동성 상쇄 주효
CAPEX는 2조4436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작습니다. 경쟁사 대비 3분의 1 수준입니다.
EBITDA를 넘지 않는 보수적 투자집행도 눈길을 끕니다. 영업활동으로 거둔 현금 내에서 설비투자를 이어오고 있다는 건데요.
최근 3년간 삼성SDI의 EBITDA 및 CAPEX 추이는 △2021년 EBITDA 2조3201억원·CAPEX 2조2547억원 △2022년 EBITDA 3조2701억원·CAPEX 2조8088억원 △2023년 3분기 EBITDA 2조5904억원·CAPEX 2조4436억원 등입니다.
증권가는 삼성SDI의 이러한 투자전략이 전기차 수요 변동성을 상쇄하는 주 요인이라고 분석합니다.
정용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이 선형으로 성장한다고 예상했던 시기엔 선점하기 위한 투자 확대와 공세 일변도가 필요했다”며 “하지만 지금부터는 확실한 수요를 바탕으로 한 보수적 투자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연구원은 “전기차 잠재 수요는 여전히 충분하나, 문제는 소비자 입장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 대비 가격 등 변화에 민감하다는 특징을 갖는다는 점”이라며 “좋을 때는 예상보다 더 좋고 안 좋을 때는 더 깊게 침체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수요가 결정될 전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재무 안정 기조 변함없어”
향후 삼성SDI의 CAPEX 증가 여부와 관련해서도 이목이 쏠리는데요. 현재 삼성SDI는 미국 내 3군데 배터리 셀 합작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공장 2개를, GM과는 인디애나주 뉴킬라일시에 공장 1개를 지을 예정입니다.
지난 10월 현대자동차와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 등 신규 수주로 인한 설비 증설 가능성도 있습니다.(▷관련기사:삼성-현대차, ‘배터리 공급’ 첫 계약…미래차 동맹 가속페달)
이에 대해 삼성SDI는 투자비 완급 조절에 자신있다는 입장입니다. 삼성SDI 관계자는 “미국 투자계획은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며 “현대차 등 최근 이어진 신규 수주로 CAPEX가 증가할 수도 있으나 재무상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올해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김윤태 삼성SDI 재경팀장 상무도 “향후 CAPEX 증가에 따른 자금조달 관련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당사는 내부유보 활용을 최우선으로 하고 필요시 외부 조달을 진행한다는 원칙에 변화없다”며 “특히 미국 투자의 경우 첨단기술차량제조 관련 정책자금을 활용할 예정으로, 차입이 늘어나도 견실한 재무구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