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국내 배터리업계 내 경영전략 변화가 강하게 감지되고 있습니다. 최근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된 이들 양사는 외형 확장 위주의 기존 전략에서 '내실 성장'으로 노선을 바꿔 잡는 모양새인데요. 전기차 성장 둔화 기조가 지속되면서 설비투자 대신 연구개발에 집중해 제품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전략 변화 기류가 우선 형성된 곳은 LG에너지솔루션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1월 22일 김동명 사장을 신임 CEO로 선임했는데요. 김 사장은 업계 내 정통 엔지니어로 꼽힙니다. 1998년 배터리 연구센터로 입사해 생산·상품기획·사업부장 등을 두루 거쳤죠.
김 사장이 부임함과 동시에 주요 임원진도 기술 인재로 교체됐습니다. 김제영 셀 선행개발센터장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면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손창완 소형전지사업부 생산센터장 전무가 최고생산책임자(CPO)로 각각 선임됐습니다.
신임 대표의 취임사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 전략 변화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김 사장은 "지난 3년간 양적 성장과 사업 기반을 다진 엔솔 1.0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해 질적 성장을 이루는 엔솔 2.0의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를 신임 CEO로 선임한 SK온도 전략 변화 가능성이 큽니다. 2021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흑자전환에 성공하지 못했고, 전기차 수요 둔화로 투자 속도 조절까지 해야 하는 만큼 내실 위주 성장전략을 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앞서 최근 양사는 해외 투자 계획 재정립에 나서며 급격한 외형성장에 브레이크를 건 바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와 추진 중이던 튀르키예 합작법인 설립을 철회하고 미시간 공장 생산직원 170여명을 감원한다고 밝혔고요. SK온도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의 조지아주 공장 생산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시행키로 했습니다.
전기차 시장 침체 영향이 컸습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2021년을 기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109%로 최고치를 찍은 후 2022년 56.9%, 2023년 36.4%로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상황입니다.
LG엔솔, 연구비 확대 시 영업익 급감 가능성
기업의 '질적 성장'은 곧 연구개발(R&D) 확대를 의미합니다. 각사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LG에너지솔루션 및 SK온 연구개발비 규모는 각각 7303억원, 2206억원입니다. 매출 대비 연구비 비중은 2.8%, 2.2%인데요. 삼성SDI(4.9%)나 중국의 CATL(5.1%) 대비 상당히 낮은 상황입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의 기술 성장이 시급합니다. 전문가들은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시장 선두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7~8%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CATL 연구개발비 규모가 매출 대비 5%대임을 감안한 수치입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매섭기에 적어도 CATL 연구개발비 비중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올해 들어 LG에너지솔루션과 CATL의 점유율 격차는 오차범위 이내로 크게 줄었습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양사의 비중국 시장 점유율 격차는 0.1%포인트(p)입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약진은 단지 상황과 운에 따른 것이 아니고 앞서 지난 몇 년간 설비 및 기술력에 대한 균형감 있는 투자가 진행된 결과"라며 "이러한 관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전략 변경은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배터리 업계는 기술력 차이가 한 번 나면 그 격차를 따라잡기 상당히 힘들다"며 "LG에너지솔루션이 CATL과 시장 점유율 차이를 더 내기 위해선 현재 연구개발비보다 2~3배가량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문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연구개발비를 늘리게 될 때 시장의 반응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연구개발비를 매출 대비 7~8%로 집행할 경우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올 3분기 LG에너지솔루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5조7441억원, 1조8250억원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단순계산하면 '1조8020억원'을 연구비로 집행해야만 매출 대비 비중이 7%로 상승합니다. 하지만 이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매출 대비 비중을 5%로 잡아도 '1조2872억원'입니다. 이 경우에도 영업이익이 대폭 축소하게 됩니다. 시장의 부정적인 반응을 걱정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룹 차원의 지원 필요성'이 언급됩니다. 향후 2~3년이 배터리업계 내 성패를 좌우할 기술개발 적기임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SK온, 미래투자 위해 수익안정 선행돼야
SK온이 처한 상황 역시 비슷합니다.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연구개발 확대가 필수죠.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당장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조달이 우선 과제로 꼽힙니다. 아직 적자에 머무는 상황이기 때문에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평가입니다.
SK온은 올해 3분기까지 5631억원 적자가 지속되며 흑자전환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앞서 SK온은 2021년 SK이노베이션에서 분리된 후 그해 6880억원, 이듬해인 2022년엔 1조726억원의 손실을 낸 바 있습니다.
때문에 이석희 신임 대표는 가장 먼저 수익 안정화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지역 내 설비 증설 속도 조절과 IPO 추진 등이 점쳐집니다.
SK온은 이르면 2025년을 IPO 시점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 대표가 SK하이닉스를 이끌던 시절 사업다각화 등을 통해 안정적 실적을 낸 만큼 임기 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IPO 과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가 큽니다.
박 교수는 "SK온은 IPO로 자금조달에 성공해야만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며 "결국 IPO가 관건이고, 상장이 된다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경쟁사가 지나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 위기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