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 달 만에 또 관세 폭탄이 터졌다. 미국이 오는 4일부터 한국산 철강에 부과하는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올리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와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보호무역 기조를 다시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중국산 저가 공세에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또 트럼프?" 관세 충격 두 배로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철강협회에서 포스코·현대제철·KG스틸·세아제강·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기업과 철강협회 관계자들을 소집해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미국의 갑작스러운 관세 인상 조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마련됐으며 정부와 업계가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구체적인 조치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며 "주미 공관과 현지 기업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 중이며 민관이 협력해 신속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US스틸 공장에서 "25% 관세만으로는 외국 기업들이 원가 절감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입할 여지가 있다"며 "관세율을 50%로 높이면 외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표는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CIT)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상호관세를 무력화한 직후에 이뤄진 것으로 법적 제한에 대응해 전면적인 철강 관세 인상으로 맞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 철강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철강제품은 마진이 크지 않은 품목으로, 관세율이 두 배로 올라가면 수출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동국제강은 인천공장에서 철근 생산을 중단했고 현대제철도 지난 4월 인천 철근 공장 가동을 한 달간 멈췄다. 지난해 포스코는 포항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잇따라 폐쇄했다. 이처럼 업계는 내수 침체와 중국산 저가 공세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 폭탄까지 겹치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국 내 생산 여력 부족으로 관세 인상이 실제 강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철강협회(AISI)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준 미국의 연간 누적 조강 생산량은 3453만톤이며 이 기간 평균 가동률은 75.2%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미국 철강업계가 아직 최대 생산 능력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수입산 철강을 대체할 충분한 생산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관세 인상이 그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울 가능성도 거론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관세가 추가되면 사실상 대미 수출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 수익성이 약화되고 국내 철강 내수 가격까지 압박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리턴'의 충격파

한미 철강 무역은 2018년 이전까지만 해도 양국이 2012년 체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사실상 무관세를 유지해왔다. 당시 한국은 철강 무관세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에 일부 양보하는 등 협상을 통해 관세 장벽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시작된 이후 미국은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2018년 3월부터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철강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연간 철강 수출량을 2015~2017년 평균 수출량의 약 70% 수준인 263만 톤으로 제한하는 쿼터제를 수용했다. 대신 쿼터 범위 내에서 수출하는 철강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받아 실질적으로 무관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맞아 재집권한 올 초부터 급격히 악화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쿼터제를 종료하고 한국산 철강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재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불과 몇 개월 만인 이번 달 4일부터 관세율을 50%로 추가 인상한다고 발표하며 한미 철강 무역 환경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관세 영향은 부과 후 2~3개월 뒤부터 본격화된다"며 "3월 관세 인상의 영향은 5~6월 수출부터 점차 나타날 것"으로 봤다. 그는 "수입 쿼터제가 사라지면서 가격과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어, 수출 전략과 제품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