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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호르무즈 봉쇄 파장…반도체까지 흔든다

  • 2026.03.12(목) 17:47

국제유가 100달러 재돌파…에너지 시장 긴장 고조
LNG 확보 경쟁 격화…핵심 소재·장비까지 변수
"유가 상승 땐 제조 원가 직격탄…공급망 대비 필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긴장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반도체 공급망에도 불안이 번지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 충돌이 확대되고 국제 유가가 사흘 만에 다시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서면서 에너지·원자재·물류를 둘러싼 공급망 리스크가 동시에 커지는 모습인데요.

업계에선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생산 비용과 소재 공급망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장은 동상이몽…'저강도 장기전' 무게

/그래픽=비즈워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가 이겼다"며 사실상 조기 종전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중동 현장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전쟁이 잦아들기는커녕 해상 충돌 범위가 넓어지며 긴장이 오히려 확산되는 모습이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외국 선박들을 잇따라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일본·태국 선적 선박 등 최소 4척이 공격 받았고 일부 선박에서는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공격 범위도 해협을 넘어 페르시아만 전역으로 넓어지는 양상입니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 항구에서는 유조선 2척이 공격을 받았고 승무원들이 긴급 구조됐습니다. 바스라는 쿠웨이트와 인접한 페르시아만 깊숙한 지역으로, 호르무즈 해협서 약 800㎞ 떨어져 있습니다. 그간 해협 인근에 집중되던 공격이 걸프 해역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과 인근 해역에서 공격을 받은 선박은 최소 15척으로 늘었습니다. 세계 최대 해운사 가운데 하나인 머스크의 선박 여러 척이 걸프 해역에 발이 묶였다는 보도도 나왔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면 이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해상 통제권 행사에 나선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기뢰부설함 대부분을 제거했다"고 주장하며 석유 기업들에 해협 운송 재개를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민간 선박 공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해협 안전이 단기간에 확보되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죠.

특히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이스라엘도 이란에 대한 군사 압박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료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보복과 압박이 반복되는 '저강도 장기전'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이겼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 종전 선언이라기보다 전쟁을 정리하기 위한 출구의 화법에 가깝다"며 "당초 미국은 장기전으로 가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정리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김 교수는 미국이 군사작전을 축소하더라도 중동 긴장이 곧바로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봤는데요. 그는 "이란 입장에서는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만큼 그대로 물러서기 어려울 것"이라며 "해상 공격이나 우회적 압박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종료를 원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란 약화 국면을 더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있어 양측 전략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가 존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너지 시장 충격…산업 공급망까지 파장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대규모 전략비축유 방출 결정에도 국제 유가는 사흘 만에 다시 장중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섰죠.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장중 100.44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 거래일 대비 4.7%가량 오른 수치입니다. 브렌트유는 지난 9일 장중 한때 배럴당 119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조기 종전 기대가 확산되며 80달러대로 밀렸었는데요.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되자 낙폭을 빠르게 되돌리며 상승 압력이 커지는 모습입니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 32개 회원국은 총 4억 배럴 규모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방출된 1억8200만 배럴의 두 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천연가스 가격도 빠르게 뛰고 있습니다. 아시아 LNG 가격 지표인 일본·한국 마커(JKM)는 전쟁 이전 100만 BTU당 약 10달러 수준에서 최근 15달러까지 치솟았는데요. 불과 며칠 사이 약 50% 급등한 겁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운송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아시아와 유럽 간 LNG 확보 경쟁도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외신에 따르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전 세계 LNG 공급의 약 20%가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이에 일부 LNG 운반선은 항로를 변경해 유럽 대신 아시아로 방향을 튼 것으로 확인됐죠.

호르무즈 해협은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지역에서 생산된 LNG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수송로입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이 해협을 통해 운송되는 석유와 가스 의존도가 높아 공급 차질의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같은 에너지 가격 급등은 반도체 산업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입니다. 웨이퍼 생산을 비롯해 노광·식각·증착 등 공정 전반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고 산업용 가스 사용량도 많습니다. 중동발 에너지 파동이 장기화할 경우 전력 요금과 가스 가격 상승이 곧바로 생산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물류 비용도 변수입니다. 반도체 제품은 대부분 항공 운송을 통해 고객사로 전달되는데, 유가 상승은 항공 운임 인상으로 이어져 기업의 운송비 부담을 높일 가능성이 큽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가격이 회복되는 시점에 비용 압박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헬륨·유황까지 변수…반도체 소재 리스크

에너지 비용보다 더 직접적인 리스크로 거론되는 것은 핵심 소재 공급망입니다. 대표적인 품목이 '헬륨'인데요. 헬륨은 반도체 장비 내부 챔버에서 잔여 가스를 제거하거나 웨이퍼를 냉각하는 데 쓰이는 필수 산업용 가스입니다. 나노미터 단위 회로를 구현하는 반도체 공정 특성상 99.9999% 수준의 초고순도 헬륨이 사용되죠.

문제는 '공급망의 지역 편중'입니다. 카타르는 세계 헬륨 생산의 약 38%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현지 일부 헬륨 생산시설이 가동을 멈추고 해상 운송까지 제한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한국의 의존도는 특히 높은 편입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헬륨 수입액 가운데 64%가 카타르산이었습니다. 고순도 반도체용 헬륨의 경우 카타르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합니다.

헬륨은 카타르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 이하로 냉각해 LNG를 만드는 과정에서 추출됩니다. LNG 속에 0.1~0.5%가량 섞여 있는 헬륨을 분리한 뒤 한국 등지에서 고순도 정제를 거쳐 반도체 공정에 투입하는 구조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전쟁 이후 헬륨 수급 상황을 긴급 점검하고 있습니다. 일부 업체는 헬륨 재활용 시스템 확대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미국과 호주산 헬륨을 대체 공급원으로 검토하는 한편 러시아 공급선 확보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습니다.

중동발 원자재 가격 상승은 또 다른 부담 요인입니다. 석유와 가스 생산의 부산물인 유황 가격이 최근 중국 시장에서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유황은 황산 생산의 핵심 원료로 반도체 웨이퍼 세정 공정에도 쓰입니다. 공급 차질이 확대될 경우 반도체뿐 아니라 비료와 금속 산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스라엘 상황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이 밀집한 텔아비브 지역이 최근 이란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서 장비 공급망에도 긴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측정·검사 장비가 생산, 일부 장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에너지 안정·수출 지원 병행해야"

트럼프 2기 중동전 4단계 예상 시나리오../그래픽=비즈워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적으로는 제한적 영향에 그칠 수 있지만,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에너지와 원자재, 물류가 동시에 흔들릴 경우 파장이 단순 비용 상승을 넘어 생산 일정과 투자 전략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특정 기업이 아니라 소재·장비·가스 등 다양한 산업이 연결된 공급망 생태계 위에서 돌아가는 구조"라며 "중동 지역에서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가스나 계측 장비 공급이 흔들리면 파장이 공급망 전체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에너지 비용 상승이 반도체 산업에 직접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교수는 "반도체 공정은 전력 소비가 매우 큰 산업"이라며 "유가와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면 제조 원가가 상승하고 이는 결국 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소재와 가스 공급망을 점검하고 대체 국가나 기업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의 대응과 관련해 에너지 안정과 수출 지원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태황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원유 공급망 안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중동 사태로 수출이 지연되거나 물류 차질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금융 지원이나 비용 보전 같은 정책 대응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단기적인 시장 충격에 대응하는 것과 함께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중장기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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