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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당한 모럴해저드의 함정

  • 2018.04.11(수) 14:40


모럴해저드(moral hazard), 우리 말로는 도덕적 해이라고도 한다. 경제학자 애로우(Kenneth J. Arrow) 교수가 영국 보험회사들이 피보험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두고 이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

보험을 든 피보험자가 보험을 믿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경미한 사고도 보험처리 하면서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지게 됨을 의미했다. 수많은 보험 계약자 중 한 사람의 행동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계약자들은 양심에 위배되는 행위를 쉽게 하고, 이로 인해 보험 회사 전체적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는 원리다.

보험뿐 아니라 전 금융 부문에서 모럴해저드가 잘 나타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고위험 거래를 하거나, 부당한 상품을 불완전하게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직원도 고객 예치금을 제 돈처럼 사용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일부 금융소비자 역시 개인회생 등의 법적 보호 장치를 악용하거나 정부 차원에서의 구제를 믿고 계획적인 소비를 포기하기도 한다.

모럴해저드라는 용어의 쓰임은 일반적인 기업의 경우로도 퍼졌다. 공기업이 국민 세금을 믿고 오랜 시간 방만한 경영을 해 부채를 키우는 것도 일례다. 또 대기업 부실이 발생했을 때 정부의 지원이 당연시되면서 기업도 방만 경영을 일삼는다. 위험 발생에 따른 비용이 제3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기업과 직원들 간에도 모럴해저드는 발생한다. 기업이 직원을 고용했지만, 대부분의 직원은 주인이 없으면 성실하게 일할 의무를 저버린다. 보이지 않는 직원의 근무 태도가 전체적으로는 기업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럴해저드를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로 치부해야 할까, 아니면 법적 처벌이 필요할까. 앞의 사례를 보더라도 대부분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행위가 대부분이다.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주의 없이 차를 험하게 몰았고, 가벼운 사고가 났지만 병원에 가서 다양한 검사를 받고 보험비를 청구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기업 대표가 휴가를 떠나면 대부분 직장인이 다른 날보다 쉬엄쉬엄 일한다?' 성실한 근무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기업이 정책적 지원을 믿고 방만하게 경영했다?' 이 역시 인과 관계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삼성증권의 경우는 어떨까.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양의 우리사주가 내 계좌로 들어왔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일부 직원은 잘못 입고된 배당 주식을 바로 주식시장에 내다 팔았다. 팔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한국을 떠날 계획이었을 것이란 초반 추측과는 달리, 단시간에 비싸게 팔고 싸게 사서 다시 똑같은 주식을 채워 넣고 시세 차익을 볼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많은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시세가 하락했다. 동시에 매수 주문이 들어오자 금세 주가가 반등해 매수 시점을 놓친 채 회사측의 전 직원 계좌 거래 정지 조치로 수량을 채워놓지 못한 것.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고, 그들은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팔아치운 범죄자가 됐다.

그들의 의도가 달랐다고 하면 그들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까. 물론 그중 일부가 수량을 채워 넣었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정당한 모럴해저드가 됐을 테다. 하지만 그들이 주식을 사고파는 사이 시장은 출렁였고, 선의의 투자자 피해가 나왔다.

나 하나 쯤이라는 생각이 시장 전체를 움직였고,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말았다. 정당한 모럴해저드라 하더라도 정당화하기 어렵게 됐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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