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제재 심사를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연기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특수목적회사(SPC)에 대한 총수익스와프(TRS) 대출을 하면서 발행어음 자금을 활용한 것을 놓고 강도 높은 징계를 내리려 했으나 판단을 유보했다. 제재가 이뤄지면 금융투자 업계에서 통용하는 업무 관행을 부정할 수 있어 이에 따른 파장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 윤석현 금융감독원장. |
◇ 금감원, 한투증권 제재심의서 결정 못내려
금감원은 전날(20일) 오후 2시부터 밤 늦게까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기관경고와 임원해임 경고, 과태료 부과 등 중징계 안건을 심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제재심은 양 측의 의견진술을 듣고 징계 결정은 추후 논의키로 했다.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조달자금 운용 건에 대해 자본시장법 상의 개인신용공여 금지 등의 규정을 적용해 영업정지에 해당하는 징계안을 회부했다. 관련 임원인 유상호 부회장과 김성환 부사장 등 10여명도 징계 대상에 올랐다.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의 TRS 대출에 발행어음 자금을 활용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봤다. 해당 거래는 SK가 지난해 LG로부터 반도체 웨이퍼 생산기업 LG실트론(현 SK실트론) 인수 이후 잔여 지분을 추가로 사면서 이뤄진 것이다.
금감원은 이 거래가 기업 대출이 아닌 사실상 개인 대출이어서 초대형 IB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자본시장법에선 초대형 IB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개인 대출로 활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 한투증권, SK에 발행어음으로 자금 대출
문제가 된 거래는 SK의 실트론 지분 매입 과정에서 발생했다. SK그룹 지주사 SK(주)는 작년초 (주)LG로부터 실트론 지분 51%를 6200억원에 인수했으나 다른 주주인 사모펀드들(전체 보유지분 49%)의 지분은 매입하지 않았다.
이에 보유지분 현금화 기회를 날린 보고펀드와 KTB PE 등 실트론의 다른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보유 지분 전량을 공개매각한다고 공고했다. 지분매각이나 상장을 통해 차익을 내야하는 사모펀드 입장에선 당연한 행보다.
실트론 지분 51%를 확보한 SK는 잔여 지분마저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정관변경처럼 주요 의사결정을 하려면 주총에서 3분의 2 이상, 즉 67%의 동의가 필요한데 당시 지분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손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SK는 증권사들로부터 자금을 빌려 실트론 잔여지분 매입에 나섰다. 지난해 8월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으로부터 각각 1672억원, 863억원을 대출받아 실트론 지분 19.4%, 10%를 추가로 확보했다.
각각 키스아이비제십육차와 더블에스파트너쉽이란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실트론 주식을 간접 보유하는 방식이다. 이들 증권사는 실트론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에 투자했다.
◇ "유동화사채 투자 부정, 자본시장 혼란 야기"
복잡해 보이는 SK와 증권사간 거래에서 활용한 방식이 TRS다. TRS란 총수익매도자(증권사)가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을 총수익매수자(기업)에 이전하고 그 대가로 약정이자를 받는 파생상품이다.
즉 SK가 실트론 주식을 직접 사지 않고 증권사에 대신 보유하게 하면서도 실트론 주가 변동에 대한 수익과 손실을 가져가는 구조다. 증권사 입장에선 주식을 보유한 대가로 기업으로부터 고정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를 위해 SK그룹 회장측과 TRS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SPC를 통한 자금이 최 회장측에 넘어간 만큼 이 거래가 기업 대출이 아닌 개인 대출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개인에 대한 신용공여 및 기업금융업무와 관련 없는 파생상품 투자를 금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논리다.
반면 금융투자 업계에선 유동화사채에 투자하는 것이 그동안 통용하는 거래유형인 만큼 이를 제재하는 것은 자본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이 검사국에서 올린 안건대로 결론이 나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 발행어음 1호란 점에서 파급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외화 발행어음도 판매 중이다.
금융투자업체 한 관계자는 "이번 제재가 이뤄지면 금융업계에서 통용하는 유동화거래나 파생상품 등이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책 방향과 제재 방향이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