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노 선생님의 노벨화학상 수상을 계기로 일본 기업들이 기초연구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다나카 코이치(田中耕一)가 최근 한 말이다. 그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으로 리튬이온전지 상용화에 기여한 요시노 아키라(吉野彰) 아사히화학 명예 펠로가 선정되자 일본의 한 매체에서 기업의 연구 활동을 강조했다.
흔히 노벨상 수상자라고 하면 대학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는 학자를 떠올리기 쉽다. 물론 요시노 씨는 메이조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는 연구 생활의 대부분을 대학교가 아닌 기업 연구소에서 보냈다. 이런 기업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생소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제품을 개발한 이후에) 약 3년 정도 해당 제품이 전혀 팔리지 않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미 기업은) 설비 투자도 들어간 상태였고요. 마치 끈으로 목을 조여 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초연구의 중요성은 몇 번을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기업이 기초연구를 꾸준히 추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투자한 만큼 성과를 기대하는 기업 속성 상 언제 어떻게 실적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연구를 끌고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요시노 씨가 개발을 주도한 리튬이온전지는 노트북과 스마트폰, 전지자동차 등까지 여러 제품에 탑재돼 있다. 그가 연구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당시에는 해당 제품이 존재했을 리 만무하다.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연구해 제품을 만든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다.
코스닥 IPO(기업공개) 시장을 취재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게 된다. 코스닥은 혁신기업 육성을 위해 마련된 자본시장이다. 하지만 정작 코스닥 입성을 준비하는 기업 대부분은 혁신보다는 향후 주가를 염두에 둔 성과 치장에 관심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한동안 그 중심에는 바이오주들이 있었다. 신라젠 헬릭스미스 등 바이오 기업들이 임상 실패 결과를 숨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영진약품과 코오롱생명과학은 소송 관련 사실을 지연 공시해 불성실 공시법인 명단에 올랐다. 바이오 기업 주가는 대부분 부진해 IPO 시장 문을 두드리는 바이오 기업 수도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올 들어 바이오 기업이 떠난 IPO 시장 자리를 메우기 시작한 분야는 바로 소재·부품 주력 기업들이다. 올 6월 말 한일 간 무역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정부는 해당 산업 지원책 마련을 지시했고 관련 부처들은 정책을 구체화했다. 거래소도 8월 말 관련 기업 상장 문턱을 낮추는 조치를 발표했다.
정부가 밀어주던 바이오가 지고 소재부품 분야가 주목을 받자 기업들의 생각도 바뀐 듯하다. 소재·부품 기업이 아님에도 관련 사업을 걸치고 증시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IPO 기자간담회에 만난 중소기업 관계자는 "소재·부품 육성 분위기를 잘 타서 거래소 심사를 통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소재 개발 업체가 아닌데 앞으로 관련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거래소 상장 심사 당시 지금 각광을 받는 소재 산업에 대해 한 마디 얹는 것이 플러스 점수를 받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 소개 과정 속에서) 향후 사업 소개에 관련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부 정책이 발표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라 바이오주 IPO 열풍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기업이 늘 수밖에 없다. 한국거래소 코스닥 상장유치업무 관계자는 "제도를 만들 때 수요가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부족한 영역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소임"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에 기댄 상장에 급급한다면 소재·부품 분야에도 거품이 낄 수 있다. 과거 코스닥 시장 버블이 터졌을 때 여파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갔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적절한 시장 타이밍을 노려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다 자기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는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것이 왕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