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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삽질 염탐기]⑧취재주제가 삽질인데 기자도 삽질

  • 2018.06.29(금) 17:04

[에필로그]국내외 창업자 30여명 '시행착오' 인터뷰
실패극복 방법은 "Keep going, try and try again"

▲ 이스라엘의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 '쏘사'(SOSA)로 가는 표지글 앞에서 김동훈 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길이 맞나요?"

 

가수가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는데, 기자도 기사 제목 따라가는 것 같다. '국내외 스타트업의 삽질'을 주제로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이번 기획 취재가 그랬다. 시종일관 힘들었다.

지난해 9~10월 국내 스타트업 10여 곳과 접촉했다. 삽질 경험을 공유해달라고 했다. 삽질 경험? 차고 넘치는 스타트업 성공기에 지친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고 싶었다. 기사란 뭔가, 새로운 것 아닌가.

쿠팡·야놀자와 같이 미국 유명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의 창업 스토리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기업을 우뚝 세운 사례는 훌륭하지만 식상하다. 첫 경험하는 창업에서 온갖 삽질을 다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기를 쓰는 '찌질하지만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라 봤다.

접촉한 스타트업 대부분이 난색을 표했다. 현재는 멀쩡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과거 실수를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사업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를 받을 때도 불리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후배 스타트업에 도움이 될 것이란 취지에 공감, 불편한 인터뷰에 응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다시 한번 전한다.

국내 스타트업 취재 과정에서 이런 일을 겪다보니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20여 명을 인터뷰할 때는 "What are the biggest challenges that you have faced so far?"(당신의 최대 삽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항상 인터뷰 말미에 던졌다.

변죽을 울리는 질문을 늘어놓으며 주춤주춤하자 오히려 공격적인 답변을 내놓는 이도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이 그랬다. "한국인들이 수 년간 이스라엘에 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는 말이다.

이같은 반응을 했던 한국-이스라엘 산업연구개발재단(KOREA-ISRAEL Industrial R&D Foundation) 데보라 샤베스(Deborah Schabes) 매니저에게 "이스라엘도 성공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삽질 경험을 듣고자 왔다"고 답하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바보같았지만, 틀리진 않았어…."

그때가 돼서야 함께 취재를 떠난 데스크(부장)와 지중해를 적시는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 넘길 수 있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전설' 기오라 야론(Giora Yaron) 텔아비브대 이사장(가운데)과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귀국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한 꼭지당 대략 5000~1만자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의욕이 과했던 것이다. 과한 의욕은 과한 삽질을 담았다. 그러다보니 인터뷰 대상의 미묘한 반응에 직면했다.

일반적인 인터뷰 기사를 쓰면 인터뷰 대상자의 감사 인사가 오는 경우가 흔하다. 직접 페이스북에 기사를 공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스타트업 성공기가 흔하듯, 대부분 인터뷰 기사가 대상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대부분 기사를 수정해달라고 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삽질만 한 것은 아니다. 창업 삽질을 취재 삽질로 이어가며 다시는 이걸 안 하겠다고 생각했으니 교훈을 얻은 셈이다. 농담이다.

한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스라엘에서 만난 창업자들은 비슷하지만 저마다 조금씩 다른 삽질을 했다. 기존에 없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경우 사업 콘셉트를 소개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투자 유치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글로벌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었다. 자국은 시장이 작으니 '스케일업'(기업규모확장) 하려면 필수라는 것이다.

 

지리적 이점을 살려 인근 국가로 진출하는 경우부터 미국과 아시아, 특히 한국 시장을 노리는 스타트업도 있었다. 국내에만 머무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자극을 받아야 할 대목이다.

환경 측면으로 보면 오스트리아와 이스라엘은 전체 인구가 1000만명도 안 되는 내수 시장에선 스타트업을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진출한 것이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로 유명한 이스라엘은 자국에서 기업을 키우지 못해 문제였다. 조금만 크면 '엑시트'(매각)했다.

"엑시트는 기업 창업자와 지분을 가진 투자자 개인들에게 이익이지만, 이스라엘 경제의 이익은 아니지 않냐"는 질문을 그들에게 매번 던졌던 이유다. 사유재산을 축적하는 게 나쁜짓은 아니지만, 이를 두고 이스라엘 정부의 창업지원정책이 성공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Keep going, try and try again!"

유럽과 이스라엘에서 만난 사람들은 스타트업의 삽질 해결책에 대해 이 말을 반복했다. 흔히 스타트업 상대로 '실패를 두려워 하지말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과 살짝 다른 뉘앙스다.

실패는 안 하는 게 좋다. 망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러니 실패는 두려워하되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한다. 이번 기획 시리즈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더욱 자세한 기사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 연재중인 '알아두면 쓸데있는 스타트업 삽질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리즈 끝 · 이 기획시리즈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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