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웅 컴투스 BF(베이스볼·피싱) 제작총괄(상무)을 최근 인터뷰했다. 프로필을 알고 만났기에 예상보다 훨씬 '동안'이었다. 그동안 경력을 들어보니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1982년생으로 사외이사인 이존우 부동산다이렉트 대표를 제외하고는 컴투스 임원 중 가장 젊다. 그럼에도 임원 33명 중 재직기간이 가장 길었다. 컴투스의 올해 상반기 보고서를 보면 홍 상무의 재직 기간은 21년 2개월에 달했다. 2002년 컴투스에 입사한 홍 상무는 직장 생활 대부분을 특히 야구에 전력투구했다. 2006년부터 야구 게임을 쭉 담당했다. 둘 중 하나다. 무능하거나, 아주 잘했다는 얘기다.
게임 기자가 꿈이었던 고교생…게임 회사로 '풍덩'
현재 컴투스가 국내 야구 게임의 명가라는 평가에 별다른 이견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직장생활은 후자, 곧 '아주 잘했다'는 쪽에 바짝 붙었다. 매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30일 현재 '컴투스프로야구V23'은 애플 앱스토어 매출 25위, '컴투스프로야구2023'은 80위, 'MLB9이닝스 라이벌'의 경우 87위에 포진했다. 이 회사 게임 가운데 앱스토어 매출 100위권에 진입한 것이 5종이라는 점,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이 매출 상위권을 이루는 국내 시장 특징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이쯤하면 국내 야구 게임의 '리빙 레전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그가 처음부터 게임 기획·개발로 시작한 게 아닌 점도 흥미롭다. 고교 시절 홍 상무의 꿈은 게임 전문 기자였다. 그래서 게임을 즐기며 컴투스가 운영하는 게임 관련 웹사이트에 고교 2학년 때부터 게임 기사, 게임 공략 게시물을 작성하곤 했다. 그러다 인연이 닿아 대학교를 휴학했을 때 사이트 운영 부문으로 컴투스에 입사했다. 외부에서 게임을 이야기하는 곳에서 직접 만드는 곳으로 이동하게 됐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활동했던 사이트는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초는 '피처폰'(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일반 휴대전화) 게임이 등장하던 시기다. 당시 컴투스는 '컴투스프로야구2'의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었고, 홍 상무는 게임 기획자로 해당 팀에 합류했다. 그는 이른바 '덕업일치'(즐기는 것과 일이 일치하는 것)라고 봤다. 홍 상무는 "원래 스포츠 게임을 즐겨 했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1995년 MS-DOS로 출시된 애콜레이드 사의 '하드볼 5'는 가장 오래했던 게임 중 하나"라고 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안정적 매출이 꾸준하게 발생하지만, 당시만 해도 인기 장르가 아니면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매출 압박을 생각하면 RPG와 같은 인기 장르에 도전하는 게 맞았다"면서도 "당시 경영진도 그랬지만 특정 장르에서 한번 1등을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야구 게임 IP(지식재산권)를 지속 개발해냈고 KBO와 MLB IP 기반 게임 2종으로 확장하면서 IP를 지속 성장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대만과 일본에 갔을 때 전철에서 우리 게임을 하는 유저를 보면서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다. 야구 게임이 좋았고 IT 발전을 신작에 멋있게 담고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R&D에 진심…"닮았다? 똑같다!"
컴투스는 단순히 야구 게임을 오래 개발·서비스한 이유로 '명가'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다.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한 품질 개선으로 차별화를 꾀한 덕분으로 파악된다. 피처폰 시절에도 20개 이상 야구 게임이 경쟁했기에 더 우수한 요소가 있어야 했고, 이런 시장 상황은 R&D를 통해 신기술 도입을 빠르게 도입하는 DNA를 갖추게 했다.
홍 상무는 "컴투스는 R&D에 적극적인 조직이고, 다양한 신기술을 받아들여 빠르게 시도하고 노하우를 쌓고 있다"며 "특히 신작들에 실제 KBO 선수 400여 명을 '3D 헤드스캔' 기술로 담았더니 닮았다가 아닌 '똑같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선수들을 재현했다. 이런 것들은 타사가 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신했다.
컴투스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프로리그 선수 출신 전문가와 함께 모션캡쳐도 해왔고, 야구 게임 로직에 해당하는 코어엔진 또한 2년여의 R&D를 통해 개발해냈다. 홍 상무는 "가장 사실적인 타구와 투구, 결과들이 실시간으로 계산되는 것도 컴투스 야구 게임만의 차별성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컴투스는 개발본부 조직 내부에 엔진개발실이란 R&D 조직을 별도로 두고 '컴투스프로야구V23'과 'MLB 9이닝스 라이벌'에 쓰이는 코어 야구로직을 개발하기도 했다. 실제 타구, 홈런 관련 물리적 논문도 참고하는 등 사실에 기초한 게임을 만든다.
리플레이도 각종 연출, 통계 자료를 분석해 활용했다. 그는 "야구 게임을 잘 만들면 플레이만 봐도 재밌다"며 "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 회전값과 배트가 들어오는 타점이 다양한 까닭에 타구가 일직선으로 나가지 않으므로 여러 방향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넣었더니 이거 되게 잘 만들었네, 이런 평가를 듣는다"고 했다.
실제 컴투스는 R&D에 많은 투자를 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비는 2021년 908억원, 지난해의 경우 1248억원이었다. 37.4% 증가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도 655억원가량을 투입했다. 매출의 15~17%에 해당하는 규모다.
기술 개발의 효과는 신규 유저 유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이다. 영화 '아바타'에 독특한 기술이 가미됐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효과와 유사하다.
홍 상무는 "관중들이 각자 행동을 취하다가 홈런이 나왔을 때 우르르 일어나고, 선수들의 표정 변화도 기술 발전으로 인해 표현할 수 있게 됐는데, 이런 그래픽은 기존 유저에게 신작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새로운 유저를 모으는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에 출시한 'MLB 9이닝스 23'과 달리 올해 7월 출시한 'MLB 9이닝스 라이벌'은 선수 모델링의 디테일을 보면서 게임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도록 공을 들였다"며 "구장 내 잔디 표현에도 감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쟁사는 어떻게 따돌렸나
야구 게임은 컴투스 외에도 다양한 게임사들이 선보였지만, '꾸준함'으로 이겨냈다는 게 홍 상무의 설명이다. 그는 "꾸준하게 IP를 유지하면서 신작을 출시했다"며 "기존 게임의 유지보수와 라이브 서비스를 게을리하지 않은 게 장수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게임 플레이에 지장 없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서비스 노하우도 경쟁력 중 하나다. 선수들의 부상, 이적 등 다양한 변수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컴투스의 야구 게임은 국내뿐 아니라 프로야구 리그가 있는 외국에서도 인기다. 매출 규모나 야구 게임을 즐기는 자체에 큰 차이는 없지만, 이용 행태가 다른 점을 포착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한 노력 덕이다. 그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유저들은 게임 습득 속도가 빠르고 카페나 포럼 등에서 정보를 빠르게 얻으며 상위 랭커가 되기 위한 경쟁에 익숙한 반면, 서구권은 다소 커뮤니티의 규모가 작고 성장이 느리면서도 오랜 기간 게임을 즐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출퇴근, 점심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아시아 유저와 달리 집과 같은 개인적 공간에서 게임을 이용하는 서구권 유저의 특성을 고려해 '세로 모드'의 게임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란 폼팩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는 것이다.
홍 상무는 "2018년 워싱턴에서 열린 야구 올스타전을 보러 가면서 뉴욕으로 건너가 지하철, 공원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북미 유저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가로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더라"며 "게임을 가로 화면에 최적화하면 콘텐츠를 더 많이 담을 수 있지만 '컴프야V23'과 'MLB 9이닝스 라이벌' 등 2종의 신작은 세로 모드도 선보인 배경"이라고 했다. 혼잡한 대중교통이 특징인 아시아권 유저에게도 세로 모드가 유용할 수 있다는 점도 서비스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야구의 위기는 야구 게임의 위기…중장기 연매출 3000억 목표
위기나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2009~2010년 무렵 피처폰 게임을 낼 때는 상위 20위권에 게임이 존재해야 다운로드가 발생하던 시기였다. 빠른 속도로 신작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이다. 홍 상무는 "2006년 합류한 팀에서 2008년에 야구 게임을 처음 론칭했을 때는 완전 꼬꼬마 팀원 2명과 함께 3명이서 만들었다"며 "제한된 피처폰 게임 용량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넣으려고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3박4일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직무의 연속 가능성도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신작을 다수 내면서 야구 게임만으로 장기전에 돌입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내부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지영 컴투스 대표도 그런 생각을 꺼냈다고 한다. 이때 홍 상무는 "당시 컴투스 야구 게임보다 유명했던 게임을 깨보겠다고 했다"며 "팬택이 국내에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처음 내던 시기여서 기회라고 봤고, 장르 1위를 하고 싶다는 비전, 야구 장르 하면 컴투스가 떠오르게 하자는 주장이 통했다"고 했다.
그는 "매출이 나지 않았다면 제 주장이 힘을 잃고 다른 것을 해야 했을 수도 있다"면서도 "절대적 매출 규모보단 장르 안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비전이 실현되고 있고, 기존작과 신작을 꾸준히 서비스하면서 시장 파이도 점점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구 게임이 야구라는 스포츠와 운명을 함께 한다는 점도 극복 대상이다. 홍 상무는 "프로야구는 한국과 미국, 일본, 대만 등 4개국만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제한된 스포츠"라며 "야구라는 스포츠가 100년 뒤에도 살아남을까, 넷플릭스나 유튜브 쇼츠에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 게임을 즐길 것인지 고민도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간 영향을 미친 최근은 이런 우려를 지우고 야구의 매력을 재확인하는 시기였다. 그는 "MLB, KBO 리그의 단축 시즌, 무관중 경기 등 프로 스포츠의 미래가 불투명했던 상황이었지만 지난해 컴투스의 야구 게임 라인업은 전년대비 매출이 20%이상 상승했다"며 "전세계 야구팬들이 현장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희 게임을 통해 팬심을 달랜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홍 상무는 "글로벌 시장으로 보면 EA스포츠의 'TSB 23' 시리즈보다 'MLB 9이닝스' 시리즈가 훨씬 많은 유저와 매출을 내고 있고, 컴투스의 게임은 KBO·MLB 소재 게임 중 넘버원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또 성장하고 있다"며 "올해에 야구 게임 시리즈 통합 매출이 1500억원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3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야구 게임 하면 컴투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