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포셀티닙', '에페글레나타이드' 등 빅파마(거대 제약사)에 이전했다가 돌려받은 신약후보물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전보다 치료 잠재력이 큰 질병을 찾아 임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 출시를 앞둔 물질도 있다.
임상, 허가 등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연구개발(R&D) 역량을 재평가받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기술반환은 약물의 가치와 무관한 이유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회사의 기술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안 끝났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현재 파트너사인 노보메디슨을 통해 혈액암 후보물질 포셀티닙의 임상 2상 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치료에 실패한 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포셀티닙과 또 다른 항암제인 '리툭시맙', '레블리미드' 병용요법의 약효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와 함께 국내 비만 환자 420명을 대상으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체중감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3상 시험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중으로 시험을 마치고 이듬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두 약물은 모두 빅파마에 기술이전했다가 반환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원래 타깃으로 하던 질병도 류마티스 관절염과 당뇨병으로 지금과 달랐다.
한미약품은 2010년대 들어 글로벌 빅파마와 잇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임상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며 대부분 반환됐다. 포셀티닙과 에페글레나타이드는 2015년 일라이릴리와 사노피에 이전했다가 2019년과 2020년 차례로 돌려받았다.
한미약품은 물질을 반환받은 후 곧바로 다른 질환에 대한 치료 가능성을 탐색했다. 빅파마가 특정 분야에서 개발을 포기했다고 하나의 물질이 가진 잠재력이 모두 부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잠재력을 발굴하며 빅파마에 후보물질을 재이전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15년 얀센에 당뇨병 후보물질로 이전했다가 2019년 반환받은 '에피노페그듀타이드'가 그 주인공이다. 한미약품은 권리반환 후 비알코올성지방간염(MASH) 치료제로 개발 노선을 바꿨고 이듬해 MSD에 총 계약금 8억6000만달러(1조2000억원)에 이 물질을 이전하는 데 성공한다.
R&D 위상 다시 세울까
향후 반환된 약물이 임상이나 허가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내면 회사의 R&D 역량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뢰를 얻어내며 비만을 비롯한 대사질환 분야 파이프라인의 파트너십 논의도 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외에 'HM15275', 'HM101460' 등 차별화된 원리의 비만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달 글로벌 제약바이오 투자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등에 참여하며 파트너사를 물색하고 있다.
항암 분야에서는 올해 'HM97662', 'HM3120' 등의 임상 중간결과 발표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한미약품은 최근 '포지오티닙', '올무티닙' 등 항암 후보물질 임상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면서 이번 결과가 항암분야 경쟁력을 재조명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기술 반환은 신약 개발 과정의 일부일 뿐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잣대가 아니다. 하나의 물질에서 파생될 수 있는 혁신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며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해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