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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난 1년간의 분쟁이 완연한 종식 단계에 접어들면서 향후 오너 일가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분쟁에서 승기를 잡은 대주주 4인 연합(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부회장·사모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 측이 내달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전문 경영인을 내세워 그룹 재정비에 힘을 실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요 계열사인 한미정밀화학, 한미약품의 R&D(연구개발)센터 등을 이끌고 있는 오너 일가 경영인의 역할에도 어느 때보다 이목이 모인다. 4인 연합 내부에선 그룹 지주사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경영진을 그대로 둘지 '뉴페이스'를 영입할지를 놓고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 형제 지분 품었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임종훈 전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지난 18일 보유 중인 한미사이언스(그룹 지주사) 주식 가운데 일부인 192만주(2.8%)를 킬링턴유한회사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로 인해 임 전 대표의 보유 주식은 기존 537만808주(전체 유통주식 중 7.8%)에서 345만주여로 감소했다.
킬링턴유한회사는 모녀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자문사인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설립한 투자회사다. 의결권 공동행사 등의 계약을 맺어 모녀와 신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앞서 지난달 3일엔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보유 중인 주식 일부를 털어냈다. 그는 신 회장의 개인회사인 한양정밀과 킬링턴유한회사에 한미사이언스 보유 주식 341만9578주(5%)를 매각했다. 보유 주식은 기존 806만5822주(11.7%)에서 465만주로 감소했다.
형제(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전 대표이사)의 지분 일부가 나란히 4인 연합쪽으로 넘어간 모양새다. 4인 연합측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은 기존 49.4%에서 57.2%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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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한미사이언스 지분율 절반 이상을 확보한 4자 연합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내달 3월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맡을 전문경영인 출신의 인사를 비롯해 다수의 새 경영진을 선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4자 연합 가운데 하나인 라데팡스파트너스는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에선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가 사내이사 후보로 나왔으나 형제 측의 반대로 사내이사 선임이 불발된 바 있다. 라데팡스는 대신 주요 주주로서 회사의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경영진 후보를 추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는 입장이다.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지분매입 재원을 외부 투자자로부터 조달한 만큼 오너일가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통상 사모투자펀드는 차익실현 등을 위해 단기적인 기업가치 증대에 초점을 맞추지만 오너일가는 장기적인 성장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하지만 라데팡스파트너스는 펀드출자자(LP)들이 모집 단계에서부터 단기적인 차익이 아닌 장기적인 투자에 동의했기에 오너일가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LP 중에는 단기적인 성과압박을 받는 기관투자자도 없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오너일가 경영인 역할은
현재 한미약품 그룹 계열사에서 주요 사업을 이끌고 있는 오너 일가 경영인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인다. 이들은 현재 한미약품그룹의 실적과 미래 기업가치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력 자회사 대표직과 R&D 부문을 각각 총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차남인 임종훈 전 한미사이언스 대표와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은 현재 각각 한미정밀화학 대표, 한미약품 글로벌사업본부와 R&D센터 총괄직을 맡고 있다. 임종윤 이사는 최근 북경한미약품 동사회를 열고 동사장으로 선임됐다고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을 통해 밝혔다.
이들 오너일가 경영인의 행보에 따라 한미약품 그룹의 재무 실적 개선도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다. 지난 1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한미약품에 대한 리서치자료를 낸 증권사 총 17곳 중 10곳이 목표주가를 하향 조절했다.
지난해 4분기 중국법인인 북경한미약품과 원료의약품 자회사 한미정밀화학의 실적 부진과 R&D 부문의 기술이전 등 성과 지연이 공통적인 이유로 지목된다.
한미약품그룹 측은 현재 주주, 임직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경영 체제를 마련하고 있는 과정으로 준비가 되면 오너일가 경영진의 역할 등에 대한 내용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한미약품그룹은 어떠한 분쟁도 발생할 수 없는 견고한 거버넌스 체제를 갖추게 됐다"며 "4자 연합은 이러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미의 영속과 발전이라는 '일치된 방향성'의 가치를 위해 흔들림 없이 상호 간 협력과 소통, 협치를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