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약품의 차세대 항암 후보물질 'HM97662'가 유력 기술수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이 약물은 종양을 활성화시키는 'EZH(폴리콤 억제 복합체 2 구성 효소)'를 표적으로 삼는다. 경쟁 약물과 비교해 한미약품의 후보물질은 내성, 약효 등에서 뚜렷한 경쟁력을 나타내며 글로벌 제약사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5배 강한 억제 효과
한미약품은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5)에서 EZH1과 EZH2를 동시에 막는 HM97662의 전임상 연구결과 두 건을 발표한다. 현재 한미약품은 한국과 호주에서 이 약물의 임상 1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EZH1, 2는 우리 몸에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효소다. 두 효소는 평상시에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우리 몸에 암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일으킨다. CDKN2A 등의 암세포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비활성화해 암세포가 성장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서다.
HM97662는 이미 시장에 출시된 EZH 억제제와 비교해 보다 적은 용량으로 강한 약효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전임상 연구에서 확인했다.
현재 글로벌 규제당국으로부터 허가받은 EZH 억제제는 프랑스계 제약사 입센의 '타즈브렉',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에즈하미아' 둘 뿐이다. 타즈브렉은 EZH2만을 억제하며, 에즈하미아는 EZH1, 2를 모두 막는다.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승인을 받았다.
타즈브렉은 임상에서 우수한 약효를 나타냈지만 내성이 발생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이 약물이 EZH2를 억제하면 그 반작용으로 활성화된 EZH1가 EZH2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입센은 현재 타즈브렉과 다른 항암제를 병용하는 요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HM97662와 다이이찌산쿄의 에즈하미아는 EZH2뿐만 아니라 EZH1을 동시에 표적으로 삼아 타즈브렉이 가진 내성문제를 이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한미약품은 이 가능성을 전임상 단계에서 확인했다.
이 가운데 HM97662는 에즈하미아와 비교해 더 적은 용량으로 강한 약효를 전임상 단계에서 나타냈다. 방광암에 걸린 동물에게 HM97662를 한 달여간 투여한 결과 에즈하미아보다 25배 적은 용량으로 종양 크기를 더 줄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HM97662는 종양 억제 유전자의 발현을 보다 효과적으로 유도했다.
기술이전 논의 중
한미약품은 차별화된 데이터를 토대로 현재 글로벌 제약사와 HM97662의 기술이전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HM97662의 임상 1상 중간결과를, 이어 2027년 톱라인(주요)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ZH 억제제에 대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은 높은 편이다.
화이자는 현재 EZH2 억제 후보물질인 '메브로메토스타트'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와 병용임상 1상 시험에서 우수한 약효를 확인했다. 노바티스는 지난해 독일 바이오기업인 모포시스를 27억유로(4조3900억원)에 인수하면서 임상 단계의 EZH1, 2 이중 억제제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특히 병용요법에서 EZH 억제제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EZH 억제제는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세포독성항암제와 달리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암세포가 면역 억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방지해 표적, 면역항암제의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어서다.
최인영 한미약품 R&D(연구개발)센터장은 "한미약품 연구진은 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정밀의학 기반의 혁신 연구를 심화해 나가고 있다"며 "EZH1/2, 선택적 HER2 등 특정 암 유전자 변이를 표적하는 차세대 표적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향후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고도화된 정밀치료의 실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